[광화문에서/김상운]‘친일 vs 반일’ 프레임 역사학계부터 벗어나야

김상운 문화부 차장 입력 2021-03-24 03:00수정 2021-03-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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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문화부 차장
최근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가 일간지에 한 신간을 신랄하게 공박하는 칼럼을 썼다. 대한제국 초대 황제에 오른 고종을 비판한 ‘매국노 고종’(박종인 지음·와이즈맵)이 타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종은 조선왕조의 병색을 걷고 회복될 수 있었던 기회를 차버렸다”며 고종을 자주독립의 개혁군주로 보는 시각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고종 황제 무능설은 일제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역사학계 거두가 지면으로 공개 논쟁을 벌인 건 이례적이다.

여기서 고종이 망국(亡國)의 원흉이냐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근현대사 이슈를 이제는 논리적으로 따져 볼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거다. 이 같은 논의에서 다양한 시각과 주장,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간섭 없이도 조선이 자주 근대화에 성공했을 수 있었겠느냐는 주제는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고종을 옹호하면 반일(反日), 그를 비판하면 친일(親日)이라는 이분법 시각으로는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없다.

올해로 광복을 맞은 지 76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우리 사회와 학계는 친일, 반일 프레임에 갇혀 있다. 정부와 여당은 6·25전쟁 이후 안정적으로 구축된 한미일 3각 안보의 틀보다 반일 프레임을 앞세우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친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민족주의를 뛰어넘어 실증(實證)을 추구해야 할 학계마저 자칫 친일로 읽힐 수 있는 견해에 대해 자기검열을 하는 실정이다.

근현대사뿐 아니라 민족 개념 자체가 모호한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그렇다. 최근 전남 해남군에서 6세기 대형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봉분을 가진 무덤)이 발견됐는데 고대 일본 정치세력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무덤 안팎의 조성 양식이 고대 일본 규슈의 것을 빼닮아서다. 사실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계 전방후원분은 여럿 발견됐다. 이 중 광주 월계동 장고분은 한반도로 망명한 고대 규슈 지배층이 묻힌 걸로 추정된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 흔적이 발견됐음을 감안할 때 전방후원분의 존재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일부 고대사학자들은 호형호제를 못하는 홍길동처럼 고대 왜인(倭人)이 묻힌 고분에 대해선 무덤 주인이 누군지 밝히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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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기자는 강단·재야 사학자들과 함께 고조선 한군현(漢郡縣) 위치 논란이 벌어진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일대로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고조선의 역사 강역을 넓게 해석하려는 재야 사학자들에 맞서 강단 사학자들은 문헌과 고고자료를 들이댔다. 이에 논리적으로 수세에 몰린 한 재야 사학자가 현직 대학교수의 ‘출신 성분’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가 일본 도쿄대에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식민사학’에 물들어 있으며, 이 때문에 고조선의 강역을 좁게 해석한다는 궤변이었다. 이제 이런 식의 유치한 친일, 반일 프레임은 폐기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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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일#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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