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 아예 하지 않는 사과[광화문에서/김희균]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입력 2020-11-11 03:00수정 2020-11-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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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망언 하루 뒤 공식 사과를 했다. 5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비용에 대해 국민의 성인지 집단학습 비용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6일 입을 뗀 것이다.

하지만 사과를 들어보면 되레 화가 난다. 그는 “당초 저의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상처를 드리게 된 것”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잘못된 사과의 요건을 고루 갖췄다. 일단 ‘내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한 자락 깐 뒤 명백한 잘못을 결과론으로 퉁쳤다. 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지 못할 때 주로 튀어나오는 유체이탈 화법(‘것 같다’)까지 구사했다.

흔히 이런 사과를 두고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라고 한다.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는 비판이다. 그런데 사과를 해야 할 상황에서 아예 사과를 안 한다면 상대방은 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한술 더 떠 숫제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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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 싶다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최근 처사를 보면 된다. 유 장관의 역점 사업을 위해 교육부로 파견 온 연구사가 2년 가까이 장관 관사를 쓴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장관에게 업무 잘하라고 세금으로 지원하는 관사를 난데없이 다른 사람에게 쓰게 했다는 건 공직 윤리에 어긋난 일이다. 장관이 관사를 본인 사유물로 여기지 않은 이상 있을 수 없는 잘못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이를 지적받은 유 장관은 “연구사가 관사를 사용하기는 했으나 특권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 발언을 두고 과거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연예인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고 말한 게 떠오른다고 했다.

아니다. 그 연예인은 적어도 음주운전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반면 유 장관은 관사를 남에게 준 것이 잘못이라는 점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혹은 모른 척하고 있다. 후자가 더 나쁘다.

돌아보면 유 장관은 이전에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6월 초 충남 천안시에서 9세 남자아이가 여행가방에 갇혔다가 숨을 거두고, 경남 창녕군에서 9세 여자아이가 옥상 지붕을 타고 목숨 건 탈출을 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사회부총리인 유 장관은 6월 12일 열린 7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며 범부처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7월 29일 열린 11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유관기관 협력을 통한 현장 발굴 강화, 부처 간 정보연계 강화, 학대발생가정 사후관리 강화 등을 담은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수년째 말뿐인 대책들을 재탕한 게 많았다. 한 달여 뒤 배곯은 어린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 또 가슴 아픈 일을 당했다. 저 대책들 중 한두 개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제대로 된 사과란 ‘다시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행동이 필수다. 진심으로 미안했다면…, 그래서 단 하루라도 빨리 대책이 실효성을 갖도록 힘을 쏟았다면…, 참사를 막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동 학대 참사가 잇달아 터져도 현장을 찾아가지 않은 사회부총리에게 이런 기대를 하는 게 무리인가 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사과#여성가족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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