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월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광화문에서/유재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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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뉴욕특파원
유재동 뉴욕특파원
29일 개막하는 미국 대선 TV토론을 앞두고 4년 전에 봤던 토론 영상들을 다시 한 번 돌려봤다. 갖은 막말 공방으로 그중에서도 역대 최악의 토론으로 평가됐던 2차 토론 모습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때만 해도 상당한 충격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이 여전히 눈길을 끌었다. 여느 미국 정치인들에겐 보이지 않는 그만의 동물적 정치 감각을 다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 토론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말을 수시로 끊고 이를 막는 사회자의 경고도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토론 주제와 관계없거나 확실한 근거도 없는 말로 상대를 거칠게 공격하면서 “내가 당선되면 당신은 감옥에 갈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스타일은 그의 ‘40년 지기’ 측근이자 정치책략가인 로저 스톤의 발언들을 곱씹어보면 이해가 쉽다. “공격, 또 공격하라. 절대 방어하지 말라.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고, 모든 걸 부인하라.” 그는 “유명하지 않은 것보다 차라리 악명을 떨치는 게 낫다”는 말도 했다.

트럼프식 막말 토론은 올해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밀리는 지지율을 역전시키기 위해 이번 토론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4년 전에 비해 ‘막장 요소’가 하나 더 생겼으니 바로 부정선거 시비다. 1차 토론 진행자인 폭스뉴스 앵커 크리스 월리스는 두 후보에게 6가지 토론 주제를 미리 통보했는데 여기엔 각 후보의 과거 정책, 대법관 인준, 팬데믹 대응, 경제 이슈, 인종 문제에 이어 마지막으로 ‘선거의 진실성’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부터 “민주당이 선거에 이기는 길은 부정선거밖에 없다”며 포문을 연 상태다.

그는 4년 전에도 선거 불복 카드를 꺼내든 바 있다. 대선 승복 여부를 묻는 토론 진행자의 질문에 “그때 가서 보겠다. 당신을 초조하게 만들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런 협박은 본인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현실화되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선거 부정 프레임은 이후 4년간 민주당과 반대 세력을 견제하는 레퍼토리가 됐다. 그는 대통령 당선 직후 “불법 투표가 아니었으면 내가 전체 득표수에서도 이겼을 것”이라고 했고, 얼마 전에는 ‘대선 후 평화로운 권력 이양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선거를 음지에서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로저 스톤은 “선거에서 지면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며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 시나리오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공했다.

특유의 복잡한 선거제도 탓에 미국 대선은 상대가 패배에 승복해야 진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선거 당일 어느 쪽도 분명한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서로 ‘우리가 이겼다’ 또는 ‘개표가 잘못됐다’며 양측이 법적 공방을 이어갈 확률이 높다. 뉴욕 월가도 이번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지에 대한 불확실성보다 선거 후에도 한동안 차기 대통령이 정해지지 않을 가능성에 더 긴장하고 있다. 11월 3일은 미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되는 날이 아니라 세계 최강대국에서 희대의 권력 투쟁과 대혼란이 시작되는 악몽 같은 날이 될 수도 있다.
 
유재동 뉴욕특파원 jarrett@donga.com
#2020 미국 대선#미국 대선 tv토론#트럼프식 막말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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