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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보가 강둑을 무너뜨렸다고?… 수압붕괴설 현장에선 실소[논설위원 현장칼럼]

입력 2020-09-02 03:00업데이트 2020-09-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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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창녕보에 무슨 일이
지난달 9일 폭우 때 붕괴됐던 경남 창녕의 합천창녕보 상류 제방이 복구돼 지난주 파란색 비닐막이 덮여 있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공도교다. 다리 아래 일부 구간에 보가 설치돼 있다. 제방 붕괴 때는 강의 둔치까지 모두 물에 잠겼었다. 제방 아래에 3개의 배수구가 보이는데 배수구와 제방 사이로 물이 스며든 것이 제방 붕괴의 원인이 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창녕=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창녕·하동=구자룡 논설위원
“4대강 보가 물길을 막아 강의 수위와 수압을 높여 상류 제방을 붕괴시키고 홍수 피해를 키웠다.”

지난달 9일 경남 합천창녕보 상류 250m 지점 낙동강 제방이 무너져 뭉텅 잘린 곳으로 누런 흙탕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여당과 환경단체, 그리고 일부 학자가 이런 주장을 폈다. 보가 수질을 악화시킨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그들이 이번에는 보가 홍수를 유발하고 피해를 키웠다는 비난까지 추가한 것이다. 보는 둔치보다 낮은 높이로 설치돼 평소에는 물이 넘쳐흘러 ‘수중보’로도 불리는 작은 구조물이다. 표적이 된 합천창녕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뭄 대비 보에 ‘홍수 책임’ 덤터기


경남 하동의 섬진강(오른쪽)으로 지류인 화개천이 직각을 이루며 합류하고 있다. 사진 위쪽이 하류 방향이다. 지난달 집중호우에 섬진강으로 화개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역류하면서 합류 지점에 있는 화개장터(삼각형 실선 부분)가 지붕까지 침수됐다. 하동=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26일 필자가 합천창녕보를 찾았을 때 보 상류 좌안(물 흐르는 방향 기준) 창녕군 이방면의 제방 30m가량이 무너진 현장은 흙과 자갈을 메워 파란색 포장을 덮고 모래주머니로 눌려 있었다.

무너진 제방은 강 안쪽 둔치에 ‘우산 2 배수문’이 있고 배수문에서 제방 반대편 농지까지는 바닥으로 콘크리트 암거 배수구가 연결돼 있는 곳이었다. 현장 취재에 동행한 신현석 부산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암거 배수구와 제방 사이는 흙과 콘크리트로 재료가 달라 물이 스며들면서 제방 붕괴로 이어진 것”이라며 “토목학에서 ‘재료 분리’로 부르는 현상이 붕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제방 바닥에는 가로 2m, 세로 1m 크기의 배수구 3개가 나란히 설치돼 있었다. 2002년 8월 태풍 ‘루사’ 때 붕괴된 낙동강의 함안군 백산제와 합천군의 광암제, 가현제 등 3개 제방도 모두 배수장이 있던 부위가 뚫렸다.

이번에 붕괴된 제방은 2004년 완공됐으며 폭 약 2.5m로, 위에는 자전거 전용 아스팔트 도로가 깔려 있다. 배수문이 없는 곳은 멀쩡했다. 방송 화면만 보고 ‘수압붕괴설’을 주장했던 일부 토목 전문가는 현장에 와 보고 바로 ‘재료 분리’를 인정했다고 한다.


수위 수량 수압 영향 미미한 보

합천창녕보는 낙동강 양쪽의 창녕군 이방면과 합천군 청덕면을 잇는 675m 길이의 공도교(橋) 아래에 설치됐다. 보 전체 길이 328m 중 110m(33.5%)는 고정 구조물(고정보)이고 나머지는 열고 닫는 수문이 있는 가동보다. 평소에는 가동보도 막아 농업용수 등으로 쓰고 5000kW의 수력발전기도 돌린다. 남는 물은 10.5m(이하 해발) 높이의 보 위를 넘어 흘러간다.

보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제방이 붕괴된 지난달 9일 오전 4시경 강물 수위는 17.6m였다. 보 월류 수위 10.5m보다 7.1m 높았고 계획 홍수위(홍수 관리를 위해 상한으로 정한 수위)보다 1m, 제방 높이 21.8m보다는 4.2m 낮았다. 강물이 차고 넘쳐 둑이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평시에 보가 물을 막아 상류 100∼200m 구간의 수위가 높아지는 현상을 ‘배수(背水·back water) 효과’라고 하는데 그 높이는 10∼20cm다. 보를 몇 m 이상 훌쩍 넘겨 강물이 흘러넘치는 홍수 때는 의미가 없고 그때는 가동보도 열린다.

보 때문에 수압이 높아졌다면 보의 위와 아래의 수위 차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방 붕괴 2시간 후쯤 측정된 합천창녕보의 상하류 수위 차는 0.18m였다. 비슷한 시간에 측정된 낙동강 전체의 8개 보 중 가장 작았다. 그뿐만 아니라 수위 차가 가장 컸던 구미보(3.99m)나 상주보(3.54m) 등에서도 제방 붕괴가 없었다. 통상 1m 이내의 수위 차는 강 상하류의 자연 수위로 간주된다.

당시 수량은 어떨까. 평상시 보를 막아놓을 때 위로 넘쳐흐르는 물의 양은 합천창녕보가 초당 약 150m³로 계획 홍수위까지 물이 찼을 때의 양 1만7000m³에 비하면 113분의 1이다. 창녕함안보는 그 비율이 110분의 1로 대부분의 보가 비슷하다. 그런 데다 집중호우 등으로 물이 불어나면 가동보는 모두 개방된다. 고정보가 있는 구간은 가동보 구간의 유속이 빨라져 흘러 내려가는 수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 홍수로 강에 물이 가득 찰 때는 보 구조물 부분이 전체 수량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미미한지 보여준다.


교각-보 모두 홍수위 고려한 시설


동아일보 취재에 동행한 부산대 토목공학과 신현석 교수가 지난달 26일 합천창녕보 상류의 제방 붕괴 지점을 살펴보고 있다.
“홍수 때 물 흐름을 빠르게 하려고 강변의 나무 한 그루도 베어내는데 강 일부를 가로지르는 고정보가 물길을 막는 것은 분명하다.” 일부 환경단체 등의 ‘보 홍수 책임론’의 주장에서 등장하는 비유다.

고정보가 물의 흐름을 막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보는 가뭄에 대비하고 농업용수, 수변시설 등을 위한 이수(利水) 목적으로 건설하면서도 홍수 때 물길을 막는 것을 보정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보를 설치하기 전에 강물이 흐르는 수직 단면을 뜻하는 ‘통수(通水) 단면’을 넓혀 보로 인해 줄어드는 단면을 보완한다”며 “이를 통해 ‘계획 홍수위’가 높아지지 않도록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바닥을 준설해 보 높이를 낮추거나 둔치를 깎거나 강변을 넓히기도 한다”며 “이 같은 처방은 교각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강이나 하천에 구조물을 세울 때 얼마나 ‘통수 단면’을 보정해야 하는지는 토목공학에서는 기초 상식이라는 것이다.

4대강 16개 보 중 죽산보(1cm)와 낙단보(9cm)는 보 설치 후 홍수위가 약간 올랐고 나머지는 같거나 오히려 낮아졌다. 합천창녕보는 보 건설 이후 홍수위가 76cm 낮아졌다.

신 교수는 “보의 이수 효과나 ‘통수 단면’ 보정 등은 무시한 채 단지 물길을 막는다며 철거를 주장하는 것은 교각이 물 흐름을 막으니 다리를 철거해야 한다는 논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보 때문에 수압이 높아져 합천창녕보 상류의 제방이 무너졌다는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빈약하고 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주장인지를 현장은 말해준다.

여기에 보가 홍수 막는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을 하는 것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심리가 보에 대한 엉뚱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합천창녕보 상류 제방이 무너진 다음 날 “4대강 보가 홍수 조절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평가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한 전문가는 “대통령의 지시는 가뭄 막는 시설에 홍수 조절 효과를 조사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댐-지형 관리 중요성 일깨운 호우

역대 최장 장마에 ‘500년 빈도’의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한 이번 홍수에서 정작 긴요한 댐 관리의 중요성은 소홀히 했다. 섬진강댐과 합천댐 하류에서 피해가 컸던 것은 많은 비가 예보되었는데도 댐 물을 빼지 않고 있다가 정작 집중호우가 내릴 때 많은 물을 방류한 것이 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낙동강 지천 황강 범람의 원인이 된 합천댐의 경우 2015년 7월 저수율이 45.9%였으나 올해 7월에는 84.4%였다. 댐 관리가 환경부로 넘어온 뒤 갈수기에 녹조를 막으려고 물을 너무 많이 가둬 놓은 것은 아니었는지 등 댐 저수율 관리 부실은 앞으로 규명돼야 할 사안이다.

이번 홍수는 강의 본류와 지천이 직각으로 만나는 곳에서 큰 피해가 발생한 것이 특징이었다. 지난주 찾아간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장터는 지붕까지 물에 잠겼다가 빠진 뒤 보름이 지났지만 문을 연 가게는 거의 없었다. 한두 곳 문을 연 식당 벽에는 천장 근처까지 물이 찼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곳에 큰 홍수 피해가 난 것은 집중호우, 섬진강댐 수위 조절 문제도 있었지만 지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철 호남대 교수는 “섬진강 본류와 지천인 화개천이 직각으로 만나는데 수량이 많고 유속이 빠른 본류에 막혀 지천의 물이 빠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강물이 역류해 합류 지점 화개장터 침수의 한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홍수는 지류 지천의 제방이 붕괴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지류 지천의 물이 원활히 빠져나가도록 섬진강이나 낙동강 본류의 ‘물 그릇’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현장은 보여줬다.

4대강 사업과 보의 환경 영향 등에 대해서는 여권과 환경단체 등에서 비판과 시비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집중호우와 홍수는 4대강 사업에서 노후 제방을 보강하거나 강 주변에 저류지 등을 건설했던 ‘홍수 방지 계획’이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대형 재난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확한 문제와 미비점을 찾아내 보강하는 것이 과제다. ‘합천창녕보 때문에 상류 둑이 터졌다’는 ‘현장감 제로’의 인식으로는 해결책은 없고 공허한 정치 구호만 남을 뿐이다.

창녕·하동=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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