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4연임 금지, 계파정치 견제 효과… “무게감 떨어져” 우려도[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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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달구는 ‘4연임 금지안’

박민우 정치부 기자
박민우 정치부 기자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여야가 손을 잡고 국회법을 바꾸게 된다면 훨씬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 것이다.”

김병민 미래통합당 정강·정책개정특위(개정특위) 위원장은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례적으로 민주당 소속 윤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고마움을 표시할 것.

‘국회의원 4연임 제한’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통합당 개정특위는 이를 당의 새로운 정강·정책에 포함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배 중진 의원들의 반발과 우려가 만만치 않았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윤 의원이 21대 국회 자신의 첫 번째 법안으로 ‘4연임 금지법’을 들고 나선 것.

여야 모두 논의의 물꼬는 터졌다. 관심은 실현 가능성이다. “낡은 여의도 정치를 바꾸려면 꼭 필요한 제도”라며 이를 추진 중인 여야의 젊은 정치인들도 “조만간 현실화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 보수 진영에서 먼저 터져 나온 ‘4연임 금지’

국회의원을 연이어 하지 못하도록 하는 ‘다선(多選) 제한’은 21대 국회에서 처음 나온 논의가 아니다. 20여 년 전인 1990년대 말 15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제기된 주장이다. 20대 국회에서도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다선 제한 입법을 발의했지만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폐기됐다. 4·15총선 당시 열린민주당도 ‘3선 제한법’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번엔 양상이 다르다. ‘4연임 금지’를 들고 나선 주체들의 정치적 무게감 때문이다. 김병민 위원장이 이끄는 개정특위는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의 혁신을 위해 무게를 싣고 있는 조직이다. 또 문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한 윤 의원은 친문(친문재인) 진영의 핵심으로 통한다. 무엇보다 경륜과 안정에 무게를 더 싣는 보수 진영에서 이 같은 제안이 먼저 나왔다는 점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통합당은 13일 발표한 정강·정책 ‘초안’에 국회의원 4선 연임 금지를 적시했다. 말 그대로 ‘국회의원은 4번 연속해서 당선될 수 없다’는 것. 김 위원장은 “3연임까지 한 의원들은 한 번 쉬라는 얘기가 아니다”며 “그동안 쌓은 정치적 역량으로 시장이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거나 여당일 경우에는 내각의 일원으로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열어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논란이 큰 사안인 만큼 이 개정특위가 마련한 초안은 앞으로 통합당 의원총회와 전국위원회의 의견수렴을 거쳐 구체적인 안과 정강·정책에 포함될지 등이 최종 결정된다.

개정특위는 당초 논의 과정에서 동일 지역구 4연임 금지안을 고려했다. 한 지역구에서 내리 3번 당선된 의원은 다음 총선에선 공천을 받을 수 없으니 수도권이나 험지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거나 불출마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개정특위가 최종적으로 내놓은 안은 3연임 이후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강경안이었다. 중진 의원들은 반발했고,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논란 끝에 개정특위는 초안에 3선이든 4선이든 21대 국회의원은 모두 초선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 경우 4연임 금지는 21대 국회의원이 앞으로 3선을 더 채우고 난 뒤인 2032년 첫 번째 대상이 나오게 된다. 중진들의 불만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윤 의원이 12일 발의한 ‘4연임 금지법’(공직선거법 개정안) 역시 과거 당선 횟수는 세지 않고, 21대 국회를 첫 번째 당선으로 보고 있다.

개정특위에서 정치개혁 논의를 주도한 박수영 통합당 의원은 “한 번에 무리하게 다 나가라고 하면 실현 가능성이 더 떨어진다”며 “일단 ‘4연임 금지’를 담은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면 그 취지가 현실에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다선 의원 중심 계파 정치 없애야”

‘국회의원 4연임 금지’ 목소리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세대교체의 시스템화다. 이를 제도화함으로써 효율적이고 투명한 인적 쇄신을 담보해야 한다는 건 의원뿐 아니라 보좌관, 당직자 등 국회 구성원들도 상당히 동의하는 부분이다.

20년 가까이 당에서 근무한 민주당 당직자는 “3선 이상 중진은 원내대표나 최고위원, 당 대표 등에 도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런 목표 없이 오로지 선수(選數)만 쌓는 데 급급한 의원들도 있다”며 “12년 동안 중앙에서 정치를 하고도 내놓을 만한 성과가 없는 정치인은 지역구민을 생각해서라도 비켜주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통합당 개정특위 관계자는 “한 지역구에서 3선, 12년 이상 국회의원을 하고 나면 지역구 이해관계나 계파 정치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견제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4연임 제한 논란은 도지사, 시장, 군수 등과의 형평성 문제로도 이어진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엔 장기 집권의 ‘폐해’ 등을 고려해 3연임까지만 허용된다. 같은 선출직이지만 유독 국회의원의 경우엔 이 같은 제한이 없다. 통합당의 한 보좌관은 “일부 중진이 연임 제한에 대해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하지만 시장, 도지사의 연임은 3번으로 제한하고 있는 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잠재적 경쟁자인 자치단체장에 대해선 세대교체, 물갈이를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자신들은 제한을 받지 않겠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말했다.

20대 국회의 경우 선수별 법안 대표발의 횟수는 초선 61.6개, 재선 80.6개, 3선 47.8개, 4선 43.2개로 집계됐다.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윤 의원은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의원 스스로 기득권 내려놓기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일하는 국회’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의원 4연임 제한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중진 의원들의 부재 가능성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행정부 장차관, 국장 중에는 10년, 20년 이상 장기 근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을 상대하는 입법부 국회의원들은 12년으로 연임을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미국 연방의회를 방문해 보면 20년 이상 의정 경험을 쌓은 상하원 의원이 많다. 4연임 제한이 오히려 정치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국회의 기능 회복을 위해 의원 임기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8년 ‘국회의원 임기 제한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연임 제한은) 정치 신인의 국회 진출을 제고하고 당론 정치를 배척하고 국회의 심의 내지 숙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국회가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공익적 가치가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통합당의 한 초선 의원은 “지역구를 바꿔 5선 국회의장을 한 정세균 총리, 경기도지사를 거쳐 4선 의원을 지낸 손학규 전 대표 같은 중진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며 “‘중진 부재론’ 등은 텃밭에 안주하고 싶은 의원들 논리”라고 주장했다.

엇갈리는 의견 속에서 연임 제한의 현실화는 결국 국회 입법 여부에 달려 있다. 윤 의원 발의 법안의 경우 국회 행정안전위와 법사위, 그리고 본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윤 의원 측은 “발의를 준비하면서도 (발의에 필요한) 10명의 동의를 채울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현역, 특히 중진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는 의미다. 윤 의원 법안 발의에 서명한 의원은 재선의 맹성규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초선 의원이다.

통합당 정강·정책에 적시된 4연임 금지안도 비대위와 상임전국위, 전국위 의결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김병민 개정특위 위원장은 “전국위에서는 원외 인사뿐 아니라 현역 의원들의 생각도 중요한데 원내 다수를 점하는 초선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의원이 거시적인 개혁 방향에 공감하고 있다”며 “부결될 가능성보다는 통과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통합당 정강·정책이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전국위에서 통과될 경우 국회에서 4연임 금지법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당 박수영 의원은 “정강·정책이 전국위를 통과하면 당론으로 채택된 4연임 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겠다”며 “당장 9월 정기국회에서 민주당 윤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병합 심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당의 ‘독주’와 야당의 ‘무기력’이 반복되고 있는 21대 국회에서 ‘정치 혁신’을 화두로 여야 의원들이 머리를 맞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민우 정치부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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