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평양의 봄’을 앞당길 것인가[오늘과 내일/신석호]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입력 2020-05-01 03:00수정 2020-05-0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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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후계자 점치기 경쟁 그만두고 북한 민주화 촉진할 방법 고민하자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김씨 왕조 이외의 것을 생각한 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은 대대로 현 체제의 혜택을 받아 현상 유지가 실질적인 이익이라 생각하거나 불만이 있어도 ‘공연히 나섰다가 내 목숨만 날린다’고 침묵하는 사람들이죠.”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할 때 현지 한반도 전문가들이 “북한 사람들은 왜 김씨 일가 세습 독재에 ‘역심(逆心)’을 품고 변화를 위해 행동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때마다 이렇게 설명해줬다. 전자의 적극적인 부역자들은 소수일 것이다. 문제는 후자와 같은 다수의 소극적인 패배주의자들이다. 수령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짜놓은 정교한 밀고의 시스템과 이를 통한 주기적인 숙청의 경험은 엘리트와 대중에게 ‘헛된 죽음보다는 비굴한 생존이 낫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했다.

학자들은 이를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 낮은 상태라고 말한다. ‘내가 나서면 정치가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사의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과 같이 혁명은 정치적 효능감을 가진 다수가 모여야 이뤄진다. 언제나 소수의 엘리트가 횃불을 들지만 침묵하던 다수가 책을 덮고 와이셔츠를 걷어 올리고 도서관과 사무실에서 거리로 뛰쳐나올 때 비로소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평양 노동당사 앞에서도 청년들이 다양한 정치적 미래를 토론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이 김씨 독재의 철퇴를 맞아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 엘리트와 대중의 정치적 효능감은 ‘0’에 수렴해 왔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이들을 ‘독재가 만들어낸 청맹과니(눈은 뜨고 있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그를 포함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을 떠나온 이들은 그나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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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세습 독재자인 김정은이 지난달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뒤 공개 활동을 하지 않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매스미디어에 등장해 ‘김정은 이후’를 논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롯한 다수 고위급 탈북자들은 일단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이 실권을 잡겠지만 여성인 그가 권력을 공고화하지 못하면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4년 탈북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리정호 씨도 김여정이 수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김평일 세력을 탄압하고 엄청난 공포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김정일 김정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간부 출신인 그는 지난달 26일 동아닷컴에 보내온 특별기고에서 “일부 사람들이 김정은 사후에 김여정과 김평일에게 (권력이) 넘어간다고 예측을 하고 있는 것은 김일성 가문의 왕조체제를 정당화해주는 매우 옳지 못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북한 고위층들도 김정은 체제의 잔인한 공포 통치와 억압에 증오와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북한 엘리트들이 올바른 결정과 선택을 하도록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주며 고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기고문에 ‘김여정·평일 후계론은 북한 주민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제목을 달면서 반성과 각성을 했다.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북한 사람들이 ‘청맹과니’임을 전제로 한 ‘백두혈통 승계론’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한 것은 아닌가. 김여정이냐 김평일이냐, 김정은 후계 점치기가 아니라 김씨 세습독재를 어떻게 끝낼지 고민할 때가 아닌가. ‘평양의 봄’을 이끌 북한 엘리트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나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김정은 은둔 소동이 가져다준 값진 소득이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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