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유세’에 달라진 선거 사진[사진기자의 ‘사談진談’]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가 목욕탕을 찾아 유권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가 목욕탕을 찾아 유권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재명 기자
김재명 기자
예전에는 선거 때 사진기자들이 아주 바빴다. 짧은 기간 전국에서 펼쳐지는 유세를 몇 대의 카메라로 기록하고 선별해 독자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의 주목을 받기 위해 후보들은 이색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주 막을 내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역대 선거 중 가장 조용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선거운동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악수 대신 주먹인사를 나눴다. 시민들을 만날 때는 손 세정제를 뿌려 주거나, 직접 소독약을 짊어지고 방역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떠들썩한 노래 볼륨을 낮추고, 대면 활동도 줄이다 보니 어떤 후보가 나왔는지 알기조차 어려웠다.

서울 종로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와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출마하면서 언론의 관심이 이곳으로 집중됐지만 두 후보는 코로나19 여파를 감안해 공개 일정을 최소화했다. 출퇴근 인사는 비공개였고, 언론 공개 일정은 하루 한두 건에 불과했다. 유세 현장을 찾은 유권자들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먼발치에서 후보자를 바라봤다. 코로나19는 ‘정치 1번지’라고 하는 종로 선거에도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후보들은 비공개 일정을 끝낸 뒤 사진을 제공했다. 제공된 사진들을 살펴보면 기존에 기자들이 직접 찍었던 사진과는 달리 후보자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애쓴 흔적들이 역력했다. 길에서 시민들과 인사하며 주먹을 부딪거나 떠들썩한 시장이 아닌 골목에서 걸어가는 자연스러운 뒷모습을 찍은 사진도 기자가 보기엔 색달랐다. 이런 사진은 후보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SNS에도 같이 올라갔다.

조용한 유세는 비대면 선거운동에 따른 자구책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양방향 소통이 아닌 본인의 유세 사진과 짧은 이야기 정도만 전하는 경우가 많아 한계를 드러냈다. 대부분의 댓글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 객관적인 상황을 파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후보자들은 좋든 싫든 민심을 듣기 위해 현장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과거 후보들은 유권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선거 기간 서민들을 만나는 후보자 사진이 많았던 것도 이 시간만이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콩나물이나 반찬 판매량으로 체감한 서민 경제의 실상을 알렸고, 택시 운전사들은 승객을 태우면서 겪고 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었다. 목욕탕을 찾아서는 시민들과 같이 탕에 앉아 민심을 듣기도 했다. 그 외에도 노동자, 해녀, 광부, 농민, 주부 등을 만나 표심에 귀를 기울였다. 언론은 이들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보도해 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후보들이 시민들을 찾아가는 횟수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시민들을 만나는 후보들의 사진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이 유세차량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후보자는 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거나 잠깐 내려 인사할 뿐 구석구석 발로 찾아다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진 것이다.

이번 선거 기간 현장을 다녀보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후보자의 화려한 이미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지역구 출마 후보는 쌀가마를 지게로 지는 퍼포먼스를 했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공약이나 비전에 대한 갈망이 컸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후보자들은 비대면 선거운동에 열중했다. 어쩔 수 없었겠지만 유권자들과의 만남이 다양한 사진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시민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21대 국회 개원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남았다. 당선자들이 지금부터라도 다시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총선#비대면 선거운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