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마스크 못구해 난리인데 왜 충분히 만들지 못할까[논설위원 현장 칼럼]

입력 2020-03-18 03:00업데이트 2020-03-18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생산 유통 소비 난맥상
부산 사하구의 중견 의료용품 생산업체 네오메드의 마스크 생산공장. 핵심 원자재인 MB필터가 부족해 두 개 생산라인만 가동되고 있다. 부산=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부산=구자룡 논설위원
지난겨울 국내 미세먼지 농도는 높지 않았다. 일부 약국에서는 의료용품 유통업체에 마스크를 반품해 가라고 요구해 실랑이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 1월 초까지도 계속됐다.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고 중국 보따리상들의 싹쓸이 쇼핑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싸움만도 벅찬데 ‘마스크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국민들이 기진맥진이다. 제조업체가 생산한 마스크의 80%를 ‘공적 공급’하고 있지만 수요가 치솟아 턱없이 부족하다. 분배의 공평성을 위해 초유의 마스크 5부제까지 시행됐지만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많다. 제조업이 주력인 10대 경제 강국, 미세먼지가 심해 마스크 사용이 많은 한국에서 ‘마스크 대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니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고만 할 수 있나. 지난달 26일 시작된 마스크 공적 공급이 18일로 3주째다. 마스크 난맥상은 왜 벌어지고 있는 걸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달 28일부터 매일 발표하는 공적 공급 물량을 기준으로 추산한 국내 1일 마스크 총생산량은 1002만 장에서 3월 16일 1038만 장으로 크게 늘지 않았다. 식약처는 “주말 보급이나 학교 비축용 등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생산량은 더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식 발표되는 공적 공급 물량으로만 추산하면 2월 초 평일 기준 1163만 장보다 오히려 100만 장가량 줄었다.

마스크 수요가 폭발해 없어서 못 파는데 생산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마스크 업계는 생산을 제한하는 세 가지 병목을 꼽고 있다. 원자재 부족, 설비 부족이나 인력난, 두 가지 모두 아니면 생산자가 의욕이 없어서다.

필자는 마스크 공적 공급 비율이 50%에서 80%로 확대되고 이틀 뒤인 7일 부산 사하구의 마스크 생산 중견업체 네오메드 공장을 찾았다. 1층 330m²(약 100평) 남짓의 공장에 설치된 11개 라인 중 2개만이 KF94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나마 오후 5시경 생산을 마쳤다. 지난 한 달여간 휴일 없이 24시간 공장을 돌렸고 8일 처음 하루 휴무한다고 했다. 모든 생산 라인을 풀가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영호 대표는 “핵심 원자재인 ‘멜트블론(MB)필터’만 있으면 하루 40만 장 생산도 가능하지만 MB필터를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근근이 구하고 있는데 언제 생산이 중단될지 모른다고 했다. 7일 작업을 이른 시간인 오후 5시에 마친 것은 계약된 공적 공급 물량 4만 장과 자체 판매용 1만 장 생산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 생산하면 빼돌리기 의혹만 사고, 당국에 설명하기만 복잡해진다고 한다. 유 대표는 “한쪽 얼굴 일부가 마비가 와 침을 맞을 정도로 밤낮없이 만들었다”며 직원들 피로도 누적돼 하루 쉬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적 공급이 시작된 뒤 정부는 생산을 늘리도록 돕기보다 생산업체가 물건을 빼돌리지 않는지 반(半)범죄자 취급을 하며 채찍만 드는 것 같다는 불만이 높다. 전국 130여 개 마스크 생산업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찰, 국세청 직원들이 상주하며 입고된 원자재와 출고된 마스크 수량, 공적 공급으로 보내는 물량은 물론 자체 판매하는 마스크도 어디에 얼마가 공급되는지 점검하고 있다. 네오메드에 파견됐던 식약처 직원도 8일 공장이 정말 쉬는지 와봐야 한다. 한 생산업체 관계자는 “작은 숫자 오류라도 나면 실수가 아니라 범죄가 되는 때”라며 “원자재를 더 구해 생산을 늘리는 것보다 숫자를 맞추고 설명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기업은 이윤 동기만 있으면 밤을 새워 국내외를 뒤져서 원료를 구해다 생산하는데 일부 마스크업체는 ‘공적 공급 통제’에 의욕이 떨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서울의 한 업체는 “생산 원가의 50% 정도만 인정하면서 하루 생산량 10배에 달하는 생산수량 계약을 요구한다”며 생산을 중단해 버렸다.

부직포와 귀걸이 끈, 안면 부착 철심 그리고 필터로 구성 요소가 단순한 마스크는 필터 공급이 생산량에 결정적인 요인이다. 정부가 최근 MB필터 생산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장기 재고물량 약 4.4t을 재고 소진으로 생산이 중단될 9개 업체에 공급하기로 했지만 생산량이 100만 장 남짓에 불과하다.

정부는 “필터를 조기 수입하고 다변화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가장 규모도 크고 품질도 좋은 수입처인 중국에서는 공안이 공장에 총을 들고 와서 감시할 정도로 원자재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MB필터의 주 생산기지가 코로나19 발원지로 일찌감치 봉쇄된 후베이(湖北)성에 몰려 있는 것도 물량 조달을 어렵게 한 요인이 됐다고 한다.

외부 도입이 여의치 않자 국내에서 필터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MB필터는 마스크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공기청정기, 자동차 에어필터, 냉난방기 등에도 사용된다. 긴급한 경우 다른 품목에 생산되는 것을 일시적으로 돌리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화학제품 만드는 기술을 응용해 마스크 200만 장을 만들 수 있는 MB필터를 만들어 기증하고 있다.

대만은 정부가 투자 리스크가 큰 생산 라인 제작을 발주한 뒤 민간에 기증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국내 모 반도체 장비업체는 제조장비 50대 제작에 착수해 이르면 다음 달 초 하루 300만 장을 생산할 수 있지만 정부 지원은 없다고 한다.

업계는 제조업 강국 한국에서 마스크 생산을 늘릴 여지는 많다며 정부가 쥐어짜내기보다 업계와 실질적인 소통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 방역 전쟁에서 마스크는 전략 물자가 됐지만 당국의 관리는 초기부터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중국 보따리상들이 1월 설날 연휴 전부터 대량 사재기에 나섰지만 정부는 2월 6일에야 개인 휴대 반출을 300장으로 제한하고 1000장 이하는 간이 신고, 1000장 이상은 정식 수출 신고를 하도록 했다. 여행객 손에 들린 마스크 장수는 세면서 정작 대량으로 수출하는 대문은 열어 놓은 꼴이다.

1, 2월 대중 마스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배와 63배 늘었다. 2월 초 정부가 “국내에서 하루 1000만 장을 생산하고 재고도 2400만 장이 있어 공급에 문제없다”고 여유를 부릴 때 마스크 대란은 예고됐다. 3월 초 수출을 전면 중단했지만 이미 많게는 수억 장이 빠져나갔다는 추산도 있다. 중국 알리바바 마윈이 일본에 기부한 100만 장도 이 시기 한국으로부터 사들인 것이었다.

국내 마스크 재고가 거의 동난 상태에서 공적 공급과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다 보니 허덕일 수밖에 없다. 마스크 품귀로 아우성이 이어지자 공평하게 분배하는 문제는 한 개원 약사가 제안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맞았다. 하지만 약국을 통한 초유의 마스크 5부제 판매는 약사도 소비자도 지치게 하고 있다. 소비자는 10곳을 다녀도 허탕을 치고 약사들은 하루종일 밀려드는 문의에 답하느라 지치고 있다. 마스크 생산자가 생산을 포기하는 것처럼 약사들도 판매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전국적인 의약품 유통망 1, 2위 업체인 지오영 컨소시엄과 백제약품을 공급처로 정한 것은 긴급하게 마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했다. 하지만 장당 100∼200원인 유통 마진에 대한 특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통 선두 업체가 비상 상황을 이용해 공급망과 이윤을 독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코로나19 및 마스크 사태가 장기화하면 기존 유통 라인을 복원하거나, 유통 마진을 줄이고 공급 시간을 맞춰 소비자들의 편익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가 마스크 대란으로 이어진 데는 마스크 사용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시가 오락가락한 것도 큰 요인이었다. 1월 29일엔 일반인도 보건용 최고 등급인 KF94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발표했다가 3월 초에는 “일반인은 보건용 마스크를 재사용할 수도 있다”며 “면 마스크도 쓸 수 있다”고 권고안을 수정했다. 과학적으론 옳은 얘기일 수 있지만 “마스크가 부족하니 하는 말”이라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가 마스크 사용 권고 수정안을 고지하면서 ‘비상 상황에서 한시적 지침’이라고 한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바람직하지 않지만 (마스크가 부족한) 비상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근거를 갖추고 자신감 있게 마스크 가수요를 줄일 수 있도록 재사용이나 면 마스크 사용을 권고했어야 했다.

이번 마스크 대란은 신종 바이러스와의 전쟁만큼이나 예기치 않은 상황이어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마스크 공장을 현장 취재하고 유통 등 관련 업자들을 만나보면서 필자가 내내 떨치기 어려운 생각은 ‘이번 마스크 대란은 정책 담당자들이 다가오는 위기 상황에서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물품이 무엇일지를 한 치 앞만 내다보고 대책을 세웠어도 훨씬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었다. 비상 상황을 맞아 ‘전략 물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도 던졌다.
 
부산=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