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어떻게 그럴 수 있나[간호섭의 패션 談談]〈26〉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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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며칠 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외상을 입거나 교통사고가 난 것은 아닙니다. 4분 30초 남짓한 한 편의 동영상이 저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사진)가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한 연설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 단상에 있으면 안 됩니다. 대서양 건너편의 학교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태껏 지켜지지 않은 빈말로 저의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습니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정상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의 신화 같은 것들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소녀의 격앙된 어조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얼마 전 가을에 찾아든 두 번의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동시에 무서움을 느꼈던지라 이 연설을 듣고는 지구가 감기에 걸렸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작년부터 일상화된 한여름의 폭염으로 지구가 열병을 앓고 있지 않나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실은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산업 폐기물과 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걸 안 지는 꽤 되었습니다. 소비 과정에서 생기는 쓰레기들 또한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음을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합니다. 그래서 재활용과 분리 배출에 동참하는 수고가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패션은 어땠나요? 의류 수거함에 한꺼번에 모으기는 하나 그것이 천연 섬유인지 합성인지 또한 소각을 했을 때 독성가스가 발생하는지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소각하지 않더라도 매립지에 묻힌 의류들은 이산화탄소, 메탄 등을 배출합니다. 또한 의류 제품은 생산 과정에서도 많은 자원을 요합니다. 원단의 원료도 식물성 소재부터 동물성까지 다양하고 염색과 세탁 과정에서 많은 양의 물도 필요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의 성장과 함께 의류 생산량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가격은 낮아졌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의류 가격이 싸진 만큼 낮은 노동 임금과 환경 처리 비용 절감 등 갭을 메워야 하는 부분 또한 커졌습니다.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낮아진 의류 가격만큼 지구는 시름시름 아파가고 있습니다. 고백하건대 패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제 의류 제조업체도 이익만이 아니라 옷을 잘 수거하는 공익에도 집중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도 옷을 잘 고르는 미적 욕구만 충족할 것이 아니라 옷을 잘 버리는 도덕적 책임 또한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고요. 지금도 내년 패션의 유행을 주도할 컬렉션이 뉴욕, 런던, 밀라노를 거쳐 파리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나온 만큼 저도 이젠 옷을 멋지게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옷을 의식 있게 버릴 줄 아는 윤리적 소비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그레타 툰베리#지구 온난화#산업 폐기물#의류 수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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