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닮은 양자의 세계[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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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실 학생 진호가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걱정돼 문자를 보내 보지만 대답이 없다. 연구실 다른 학생을 시켜 집으로 찾아가 보게 하고 연락을 취해 보지만 역시 답이 없다. 미래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일까. 진호가 걱정된다.

“교수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이런 질문에 “지금이 꼭 만족스러운 상태는 아니지만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없어요”라고 하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한다. 혈기 넘치는 20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대답을 원했던 것일까. 나의 20대는 나름대로 낭만적이고 멋진 시간이었지만 예측 불가능한 시기였다. 구르는 돌처럼 언제 어떻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절이었다. 그런 불안하고 힘든 시간으로 굳이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젊음의 순간들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모든 가능성 가운데 자신의 위치를 찾는 시기다. 이런 20대의 삶은, 확률적으로 설명되는 원자 속 전자의 운동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껴안고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고 가는 청춘의 시간들….

전자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의 문을 열어야 한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더 이상 가설의 세계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원자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들이 사는 거시 세계와 원자들의 미시 세계는 크기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어찌 10억분의 1m의 미지의 세계를 인간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1926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물리학적 운동방정식을 발견했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이 행성의 움직임을 포함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슈뢰딩거의 운동방정식은 전자의 움직임을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으로, 전자가 원자 안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률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뉴턴 고전역학의 세계와 양자역학의 세계에는 분명 경계가 존재한다. 마치 현실과 이상 사이를 구분 짓는 경계처럼. 그 경계는 어디쯤일까. 크기로 이야기하면 원자 1000개에서 1만 개의 크기에 해당하는 나노 사이즈의 세계다. 이러한 세계를 중시계(mesoscopic system)라고 한다. 지금의 컴퓨터 메모리 크기에 해당된다. 많은 이가 반도체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집적회로의 선폭 간격을 10nm(나노미터) 이하로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렇게 간격이 줄어들면 집적회로들 사이에서 양자 간섭이 일어나기도 한다. 반도체 공정이 한계선상을 넘어 원자의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이처럼 반도체 메모리칩 자체가 슈뢰딩거의 방정식이 적용되는 세계 속에 놓여 있다. 원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양자 한계를 뛰어넘는 반도체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불가능의 세계를 현실로 바꾸고 양자의 세계를 현실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건 그렇고 진호야! 내가 너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을 본다면 연락 부탁한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양자역학#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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