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 찾는 나그네에게 살구꽃 피는 마을 ‘행화촌’을 가리킨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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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무렵 어지러이 비 날리는데/길 가는 나그네는 심란하기만.
주막이 어디냐고 물으니/목동은 저 멀리 행화촌을 가리킨다.
(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淸明>

-두목(杜牧, 803~852)

청명은 자연의 생명력이 왕성해지기 시작하는 절기, 인간이 대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한 해의 기운을 새롭게 맞아들이는 때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 무렵이면 봄 풀밭을 노니는 답청이나 성묘 등으로 가족, 친지들이 한데 어울려 흥겨움을 나누었다. 하지만 시인은 지금 그 대오에서 떨어져 있다.

어지러운 빗속에서 홀로 객지를 떠돌고 있으니 그 심사는 자못 울적하기만 하다. 고달픈 삶에 덜미라도 잡혔다면 그 위안은 이제 해우물(解憂物)-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비도 피하고 심란한 마음도 달랠 겸 주막을 찾으려는 시인에게 목동은 무심한 듯 손짓으로 대꾸한다.

행화촌은 문자 그대로 살구꽃 피는 마을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기도 하고, 시인의 행적과 관련지어 난징(南京) 부근에 있는 행화촌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행화촌이라는 지명이 중국 전역에 스무 곳 가량 등장한다는데 한시에서는 주막의 대명사로 곧잘 쓰인다.

‘요(遙)’는 ‘멀다’는 뜻으로 시인이 찾는 목적지가 멀리서나마 눈에 띈다는 말인지, 아득히 멀어 적이 실망스럽다는 말인지는 알 길이 없다. 시 마무리가 ‘저 멀리가 행화촌’이라는 손짓 하나로 갑자기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가 곰살궂게 해명하는 대신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이 수법은 한시 특유의 여운의 미(美)이기도 하다. 굳이 한자의 표면적 의미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다. 촉촉한 봄비 속에 오버랩되는 연분홍빛 살구꽃, 객수(客愁)를 달래려 주막을 향하는 시인의 발길이 문득 바빠질 것 같다.

두목은 호방한 시풍과 풍류 넘치는 서정적 분위기를 고루 갖추었던 만당(晩唐)의 대표 시인으로, 대시인 두보에 비견되어 흔히 ‘소두(小杜)’로 불리기도 한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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