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66〉달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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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 이호우(1912∼1970)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 익은 풍경이되 달아래 고쳐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 들던 그날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세상에 없는 듯 아름다운 정경이 작품 속에 들어 있다. 없는 것을 읊었을까 싶지만 이것은 시인이 보았고 느꼈던 조국이다. 우리 민족의 가슴 안에는 바로 저런 나날과 풍광이 깃들어 있었다. 낙동강은 맑아 사람이 없어도 달빛으로 가득 찬다. 푸른 달빛과 금빛 노을이 축복하듯 내려 있어 마음을 의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낯익지만 볼수록 새로운 것이 이 땅의 산하였고, 사람들도 가옥들도 정겨웠다.

이렇게 시조시인 이호우는 축복같이 소중한 우리네 사람과 터전을 노래한 바 있다. 여기 수록된 시는 이호우의 등단작이다. 1940년 문단의 어른이었던 이병기 시인이 그 유명한 ‘문장’지에 추천했던 것이 이 작품이고 시인이 1955년도에 발간했던 시집 가장 앞에 실었던 것도 이 작품이다. 이병기는 이 작품이 “새롭고 깨끗하고 술술하다”면서 대개 강이면 백구나, 이백, 흥겨움 등을 떠올리는데 ‘달밤’은 우리만의, 시인만의 정서를 담아 훌륭하다고 고평했다.

우리만의 풍경과 정서를 사랑했던 시인은 민족애를 품고서 시를 썼다. 그의 시집을 보면, 한 민족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호흡인 국민시가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자신은 그 길을 향해 매진할 것이라는 다짐도 있다. 시인마저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사랑하고 지켜온 곳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 꿈같이 아름다운 곳이 바로 우리 사는 여기, 이곳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달밤#이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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