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80분 동안 단독회담을 가졌다. 회담은 그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홍 대표 측에 남북 정상회담을 주제로 제의하자 홍 대표가 주제를 국내 정치 현안 전반으로 하자고 역제안했고, 이를 문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성사됐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와 단독회담을 가진 것은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어제 홍 대표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초당적 협력을 거듭 당부했다고 한다. 홍 대표는 “남북 회담을 반대하지 않지만 북핵 폐기 회담이 돼야 한다”며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에 대한 경계와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홍 대표는 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반대하지 말아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며 “(정상회담 진행에)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제1야당 대표를 부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대형 현안을 앞두고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진행 과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홍 대표의 말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제1야당 대표가 이왕 말을 꺼냈으니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명확히 설명했으면 한다.
어제 회담은 대화의 70%가 남북, 한미 관계에 집중되고 국내 현안들에 대해선 각자 일방통행식의 요구 전달에 그쳤다. 문 대통령은 추가경정예산안의 통과에 협조를 요청했고, 홍 대표는 청와대발(發) 개헌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임명 철회, 정치보복 수사의 중단과 ‘청년 실업에 책임 있는 좌파 경제학자’라는 이유로 홍장표 경제수석비서관의 해임 등을 요구했다. 김 원장 진퇴와 적폐청산 논란, 개헌, 최저임금·근로시간 단축 등 주요 현안들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교환은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 회담의 첫발을 뗀 것은 다행이다. 어제 회담은 문 대통령이 그제 낮 남북 정상회담 원로자문단 행사를 끝내고 나오면서 갑자기 지시해 이뤄졌다고 한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만나 소통하고 깊이 있는 준비를 통해 국정 전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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