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세돈]경제성장률이라는 함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3일 03시 00분


韓銀이 성장전망 3%로 올린 건 예상치 못한 반도체 특수로
설비투자가 급증했기 때문… 내년 경제가 걱정될 수밖에
성장률 집착 정책은 성공 못 한다… 현 정부도 건설경기 위축 두려워
新DTI 전국 확대 미뤘는가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금년 초만 해도 2.5%대 저성장을 예고하던 한국은행이 입장을 바꿔 국제통화기금(IMF)과 정부처럼 3% 전망그룹에 동참했다. 정부도 그렇고 시장 분위기도 한은의 3% 성장률 수정 전망에 한껏 고무되는 분위기다.

경제가 좋다는데 얼굴 찌푸릴 이유야 없지만 한은의 성장률 수정 전망을 반길 수만은 없는 몇 가지 우려가 깊이 숨어 있다. 전략상 항상 긍정적 전망을 내놓는 정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립적이고 냉철한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설비투자 때문이다. 예상 못 했던 반도체 특수로 연초 2.5% 증가할 것으로 봤던 설비투자가 14.0%로 수정되면서 성장률 전망치가 크게 올라간 것이다. 한마디로 금년 경제가 예상보다 좋게 나온 것은 예상치 못한 반도체 특수에 따른 설비투자 덕이다.

2000년 이후 17년간 설비투자 증가율이 10%를 넘은 적은 2010년 한 번(22%)밖에 없다. 그것도 전년도 2009년의 7.7% 감소에 따른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이므로 이동평균해서 보면 연 10% 증가율에 못 미친다. 사실 지난 10여 년 저성장의 뿌리에는 지독한 설비투자 부진이 있었다. 그에 비해 금년 14% 설비투자 증가는 대단히 예외적인 현상이다. 반도체 특수가 매년 지속적으로 확장되지 않는 한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은은 내년도 설비투자 증가율을 2.8%로 크게 낮춰 잡았다. 그만큼 내년 경제가 걱정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우려다.

두 번째 우려는 수입의 급증세다. 올해 초 한은은 수입이 2.3% 증가할 것으로 봤는데, 이번에는 4.8%포인트 오른 7.1%로 수정 전망했다. 지난 5년간 수입은 꾸준히 감소했다. 그러던 수입이 증가세로 반전돼 확대된다는 것은 성장에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수입이 1%포인트 증가하면 성장률은 약 0.4%포인트 떨어진다. 7% 증가만 해도 성장률을 2.8%포인트가량 갉아먹는 것이다. 참고로 1995년과 1996년 수입 증가율이 각각 32.0%와 11.9%로 폭증한 다음 해에 한국 경제는 IMF 외환위기로 빠져들었다.

세 번째 우려는 성장률 자체가 일반 국민의 살림살이와는 동떨어진 통계가 돼버린 지 이미 오래됐다는 점이다. 연일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운다고는 하지만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투자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었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 경제를 끌고 가는 우량회사 주식들을 절반가량 혹은 그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들 우량 회사가 일으키는 부가가치 창조는 외국인 지분만큼 그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가게 된다.

게다가 성장률이란 개념 안에는 안 팔려서 쌓인 재고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재고가 쌓이면 쌓일수록 기업 경영은 어려워도 한은이 발표하는 성장률은 올라가는 역설이 나타난다. 올해 설비투자 증가가 상반기 성장률(2.8%)의 약 절반 정도(1.4%포인트)를 기여했다면 재고 증가는 약 6분의 1(0.4%포인트) 기여했다. 결코 작지 않은 수치다.

성장률은 생산량의 증가를 반영할 뿐 생산비용 증가나 가격 하락 같은 경영애로 사항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쌀 생산이 증가했지만 쌀값 하락으로 농가가 어려운 것이 좋은 예다. 경제가 3% 성장했다고 해서 기업의 경영이나 국민의 살림살이가 3% 나아졌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오류는 없다.

이런 근본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성장률에 집착한 경제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747(성장률 7%, 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진입) 정책’이나 박근혜 정부의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소득 4만 달러) 정책’이 실패한 이유가 따지고 보면 성장률 집착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률에 집착하다 보면 부작용을 초래하는 정책이 나오게 마련이다. 1989∼90년 신도시 200만 호 건설이나 2001년 말 주택 재당첨 금지 해제 조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정책, 그리고 2014년 이후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 조치가 다 그런 발상에 기인했다. 말로는 아무도 안 가본 길을 가는 창조경제라고 하면서도 발걸음은 닳아빠진 옛길을 밟았다.

혁신성장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는 무엇보다도 성장률 집착을 버려야 한다. 건설경기 위축을 염려해 연착륙이라는 미명 아래 신DTI 전국 확대 적용을 미뤘다면 그건 잘못이다. 자꾸 3%에 매달리는 것 같아 걱정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성장률#이명박 정부의 747#박근혜 정부의 474#혁신성장#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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