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과 중식비가 포함된다고 판결해 노조 손을 들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어제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3년 치 임금을 소급 지급할 것을 청구한 소송에서 사측이 4223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기아차 측이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2008년 이후 당기순손실이 없었기 때문에 재정과 경영 상태가 나쁘지 않다”며 ‘신의 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13년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 신의칙에 따라 통상임금 소급분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기아차는 올해 들어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떨어지는 등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기아차 측은 “판결을 현재까지 확대 적용하면 잠정적으로 부담할 금액은 1조 원 안팎”이라고 밝혔다. 이를 충당금으로 반영하면 3분기 적자가 불가피하다. 기아차 지분 34%를 보유한 현대자동차도 손실이 막대하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은 현대차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재판부는 또 “근로자들이 회사의 중대한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결과가 발생하도록 방관하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했지만 6년 연속 파업을 이어가는 노조의 행태를 볼 때 수긍하기 어렵다. 재판부가 과거 실적에 의존해 기아차의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본 것이다.
한국 자동차업계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평균 12.2%로 독일 폴크스바겐(9.5%)이나 일본 도요타(7.8%)보다 높다. 여기에 ‘통상임금 폭탄’까지 터지면 연구개발(R&D) 투자가 줄어들어 산업 경쟁력 자체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인건비 증가 부담이 협력업체 또는 다른 제조업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재계는 “최저임금 산정에는 상여금과 수당을 빼면서 통상임금에 이를 넣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지난달 30일 “인건비 상승은 주한 외국 기업의 한국 내 투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기업 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면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경고다.
산업계는 이번 판결이 다른 기업 노조를 자극해 ‘통상임금 소송 쓰나미’로 번질 것도 우려하고 있다. 이미 2013년 이후 192개 사업장이 통상임금 소송에 휩싸였다. 이 가운데 115개는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통상임금 문제로 한국 경제가 흔들리기 전에 미리 법적 정비를 하지 않은 정치권 책임이 크다. 2015년 노사정위원회는 통상임금 범위 법제화를 권고했지만 국회가 제 할 일을 미뤄왔다. 조속히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더 이상 이 문제로 산업계가 혼란을 겪는 일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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