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교수립 50년, 한일관계 정상화 미룰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0시 00분


50년 전 오늘 도쿄의 일본 총리관저에서 한일 기본조약과 4개의 협정 조인식이 열렸다. 6·25전쟁 중인 1951년 10월 미국의 중재로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한 지 14년 만에 한국과 일본은 어두운 과거를 덮고 동반자로서의 협력시대를 새로 열었다. 현재 한일관계가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한일 국교정상화는 필요의 산물이었다.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했고, 일본 역시 한반도 분단과 냉전 구도 아래 안보와 정치적 안정, 경제적 협력과 분업을 위해 한국과 화해가 필요했다. 동북아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면 미국의 주도 아래 한미일의 반공(反共) 공조 체제가 필수였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일 기본조약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갈등의 씨앗을 남겼다. 오늘날 전쟁과 인권에 대한 인식은 50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하다. 과거의 반(反)인륜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끌어올리는 일임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활발한 경제협력과 민간교류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것은 최고지도자들의 언행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12월 정권 출범 1주년을 맞아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검증을 비롯해 한일 화해의 토대를 흔드는 역사 역주행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이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12년 8월 독도 방문과 일본 국왕의 사죄 발언 촉구로 일본을 자극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사 문제와 기타 현안을 분리 대응하겠다면서도 ‘과거사 문제 해결’의 전제를 강조해 한일 정상의 대화를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한일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한 것은 두 나라의 전략적 협조가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을 달성하려면 한국은 주변국과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다. 일본과 척을 진 상태에서 평화통일이 가능할 리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은 북핵 문제 대응을 비롯해 원자력 이용, 글로벌 감염병과 재난 대처 등에서도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들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오늘 각각 서울과 도쿄에서 열리는 상대국 주최 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것은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다. 두 정상의 교차 참석이 양국의 갈등 해소와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유흥수 주일대사가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정상회담의 전제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도 회담 성사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어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외상과 만났다.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조선인이 끌려가 강제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표시하기로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관계의 완전한 회복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종전 70주년을 맞아 8월에 발표할 담화는 양국 갈등 해결에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올 3·1절 기념사에서 제시한 ‘한일 미래 50년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한국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5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난관을 무릅쓰고 정상화했던 한일관계를 박근혜 대통령이 회복함으로써 ‘아버지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했으면 한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갈등에서 화해로 돌아서는 기회로 만들 책임이 양국 지도자에게 있다.
#한일관계#국교 수립#국교정상화#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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