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내일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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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우리도 건널까?”

후배가 눈을 찡끗하며 묻는다. 건널목의 초록색 신호등 불빛이 깜빡거리며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사람들은 죽어라 뛰어가고 있다. 걸음아 나 살려라 뛰면 나도 건널 수 있겠지만 이런 경우 나의 대답을 후배도 알고 있다. “다음에 건너자.”

그 다음의 신호를 기다려 느긋하게 길을 건너는 나의 팔짱을 끼며 후배는 한마디 지른다.

“하여간 우리 선배 오래 살겠어. 도무지 뛰기를 하나, 안달복달을 하나, 그러니 세상 떠나는 것도 여유 있게 아주 천천히 갈 거 아니우.”

느린 사람이 오래 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건널목 횡단사고를 당할 확률은 몹시 낮을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불과 몇 분 안에 신호는 다시 오련만 마치 이것이 생애 마지막 신호라도 되는 양 허겁지겁 무리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다급한 뒷모습을 보면서 조금만 여유를 가질 순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 사는 한 부부가 있다. 그 부부가 사는 마을에는 9시, 10시, 11시, 이렇게 한 시간 간격으로 오는 버스가 있다.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는 날이었다. 아내가 외출 준비에 꾸물거리자 남편이 마당에 서서 재촉을 해대는 통에 아내는 허둥지둥 남편을 따라 집을 나섰다. 서두르는 남편의 뒤를 따라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었다.

“당신 때문에 버스 놓쳤잖아.”

남편이 짜증을 내자 아내가 도리어 화를 냈다.

“당신이 재촉하는 바람에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나와서 쓸데없이 정류장에서 30분이나 기다리게 생겼잖아요. 버스 오려면 아직도 멀었구먼.”

남편은 아내 때문에 버스를 놓친 것이고, 다음 버스를 타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내로서는 남편이 괜히 서둘러 너무 일찍 나온 셈이 된다. 그런데 살다 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기회는 거의 없다. 얼마든지 다음 기회가 있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조급증이다.

마치 오늘 세상이 끝나는 듯이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빨간 신호등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반드시 앞으로 쭉쭉 진행하라는 초록불이 켜진다. 그리고 다음 신호에 건너도 인생의 레이스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2014년이 가니까 2015년이 오듯이 오늘이 가고 내일은 온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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