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퍼거슨 감독의 ‘승점 쌓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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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名將),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이번 주에도 승점 쌓기에 바빴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은퇴한 지 벌써 1년 8개월이 돼 가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요? 이는 그가 남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명언(?) 때문인데요. 이 발언이 유명해지면서 누리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올라온 글이 이치에 맞지 않거나 황당해 구설수에 오를 때면 여지없이 ‘퍼거슨 감독이 승점을 쌓았다’는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명언이 증명됐다는 일종의 조롱인 셈입니다.

이번 주 퍼거슨 감독의 ‘최전방 공격수’는 단연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였습니다. ‘땅콩 회항’ 논란의 당사자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최근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메시지를 언니에게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평소 SNS를 즐겨 하며 소통의 이미지를 쌓아온 그답게 문제가 불거진 당일 오전 7시경 트위터를 통해 “치기 어린 잘못이었다”며 신속하게 사과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조 전무가 썼다가 지운 글(인터넷 기사 댓글을 보다 누군가 너무 극악한 내용을 올려 잠시 복수심이 일어 속마음을 언니에게 보냈다는 내용)까지 알려지면서 한 누리꾼은 “막장 재벌 3세”라며 날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7일 담당부서 직원 40여 명에게 땅콩 회항과 관련해 “회사의 모든 잘못된 부분은 임직원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e메일을 보냈던 조 전무가 또다시 문자메시지로 논란을 일으키자 대중은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의 연이은 득점에 퍼거슨 감독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입니다.

수술 중 사진을 올린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성형외과 간호조무사도 뛰어난 경기 지배력을 자랑했습니다. 이 간호조무사는 환자가 수술대에 있는 상황에서 초에 불을 켠 채 의사에게 생일 케이크를 전달하는 사진을 SNS에 올려 누리꾼들의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간호조무사들끼리 수술 중에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가슴보형물로 장난을 치는 사진 등을 보면 의료인의 품위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간호조무사의 ‘활약’에 대중은 ‘열띤 성원’을 보냈습니다. 해당 병원 홈페이지는 한때 해커그룹의 공격을 받았고 누리꾼들의 접속도 폭주했습니다. 병원 측은 결국 12월 31일 홈페이지를 폐쇄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 하나에만 의존하는 단순한 전략으로는 절대 리그에서 우승할 수 없다는 것을 명장 퍼거슨 전 감독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경기장을 누비던 ‘퍼거슨의 아이들’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지난해 4월에는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아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게시물을 작성해 도마에 올랐습니다.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 후보가 교육감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고 후보가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왼손을 들고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은 패러디물의 전설로 SNS 세상에 자리매김했습니다.

입대를 피하기 위해 고의 발치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가수 MC몽의 복귀에 군가 ‘멸공의 횃불’이 순위권에 올랐고 가수 강원래 씨는 가수 고(故) 신해철 씨의 추모 분위기를 비난하는 글에 댓글로 동조했다는 이유로 결국 고개를 숙였습니다. 유독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던 지난해, SNS 세상도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말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는 SNS가 인생의 낭비라며 혀를 찼지만 SNS 공간은 그의 발언마저도 하나의 문화로 껴안았습니다. 실제로 저 또한 새해 첫 일출을 뒷산 정상이 아닌 페이스북에 게시된 사진으로 봤을 만큼 기꺼이 인생의 낭비를 즐겨 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새해에는 다만 SNS에서 퍼거슨 감독이 승점을 올릴 일이 적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타임라인을 수놓은 첫 태양처럼 올 한 해 늘 밝고 환하게 웃을 일만 있기를 기대합니다. 퍼거슨 감독도 그러기를 바랄 겁니다.

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퍼거슨#땅콩회황#성형외과#mc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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