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고의 검색어는 ‘땅콩’이다. 더불어 ‘경비원’도 있다. 왜 그런지는 다들 아시리라. 지난해 상반기에도 ‘비행기 라면 사건’ ‘우유 대리점 사건’ 등 비슷한 일들이 잇달아 터졌다. 그래서 과학동아를 뒤져봤더니 지난해 6월호에 ‘갑을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유정식 경영컨설턴트가 쓴 글이 있었다. ‘갑’의 ‘진상짓’과 특권의식에 대한 심리학 연구였다.
먼저 심리학자 폴 피프가 자동차 끼어들기를 주제로 한 연구다. 최고급 자동차는 30% 넘게 끼어들기를 하는 반면, 가장 낮은 등급의 자동차는 7∼8%가 끼어들었다. 가장 낮은 등급의 자동차는 한 번도 횡단보도 선을 밟지 않았으나, 최고급 자동차는 무려 45% 넘게 횡단보도를 침범했다.
상류층 사람들이 속임수를 잘 쓴다는 사실은 주사위 실험에서 더욱 명확했다. 참가자들은 주사위 5번을 던져 합을 직접 기록했는데, 상류층 사람들이 매번 더 높게 나왔다. 사실 주사위 숫자의 합은 항상 12가 되도록 해놨는데, 상류층일수록 더 많이 속였던 것이다. 피프는 “상류층 사람들은 비윤리적 행동으로 인한 제재를 대수롭지 않게 인식하고, 비윤리적 행동을 합리화할 만큼 목표 지향성이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원래 이런 사람이 갑이 되는 건지, 갑만 되면 이러는 건지는 기자도 잘 모르겠다.
갑의 어떤 성격이 문제가 되는 걸까. 게르하르트 블리클레 독일 본대학 교수는 심각한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76명의 죄수를 대상으로 자기 통제력, 쾌락주의 성향, 성실성, 나르시시즘 성향 등 4가지 특성을 측정했다. 그 결과, 리더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적일 때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았다. 특이한 점은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이 일반 관리자들보다 성실성 점수가 높았다는 사실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성실성은 높지만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갑은 을을 가혹하게 대할까. 심리학자들은 갑의 ‘도덕적 선명성’을 지적한다. 스콧 윌터머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권력자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할 때 더 엄격하고, 그래서 더 심한 벌을 주려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별것 아닌 행동에도 필요 이상으로 엄격히 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튜어디스가 땅콩을 봉지째 내오든 까서 접시에 내오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비즈니스 클래스 등에서 고급 서비스를 마음대로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승무원의 사소한 실수조차 ‘비도덕적 행동’이라 오해하며 노발대발한다. 물론 패스워드를 까먹는 것은 큰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공격적인 행동 때문에 사무장이 당황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권력자는 약자에 비해 목표 달성을 늘 쉽게 생각한다. 제니퍼 휫슨 미국 텍사스주립대 교수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권력자’와 ‘약자’로 인식하게 한 뒤 ‘아마존 밀림지대로 여행 가기’란 목표를 부여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보를 줬는데 권력자는 약자에 비해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있는 정보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갑이 을에게 가혹한 이유에 대해 이런 심리적인 요인 외에 테스토스테론 같은 호르몬이나 뇌 특정 구역의 변화 등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건 갑에게 더 비참한 게 아닐까. 어떤 갑도 “내가 잠깐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어요”, “사실은 왼쪽 뇌 아래에 조그마한 돌기가 있어서 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워요”라고 변명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그들에게 그토록 큰 권한을 맡긴 우리가 너무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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