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만 명 울린 동양그룹 총수에 사기罪 중형 내린 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8일 03시 00분


법원이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에 대해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현 전 회장은 1조3000억 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해 투자자 4만여 명에게 손해를 입힌 혐의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기업 범죄”라며 검찰이 구형한 형량인 징역 15년의 80%에 해당하는 중형을 선고했다.

그동안 법정에 섰던 대기업 총수들은 주로 횡령이나 배임 등의 죄목이었지만 현 전 회장은 죄질이 훨씬 나쁜 사기가 죄목이다. 그는 동양그룹이 기업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되자 계열 증권사의 창구를 통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CP를 판매해 은행 빚을 줄이는 방법으로 워크아웃 대상에서 벗어났다. 투자자들은 “우량한 동양시멘트라는 담보가 있어 발행사가 망해도 주식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CP를 샀지만 결국 동양시멘트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원은 “현 전 회장은 CP 발행 당시부터 자력으로 만기 상환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대기업 총수 중에서 흔치 않은 엘리트 출신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 생활을 잠깐 하다 동양그룹 창업주의 맏사위가 되면서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법을 배운 사람이 준법정신으로 기업경영의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남보다 많이 배운 지식으로 여러 사람에게 고통을 줬다. 피해자 중에는 봉제공장에서 10년간 번 돈을 날린 사람도 있었다.

대기업 총수들이 거대 기업의 신용을 이용해 개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LIG그룹의 3부자(父子)도 2200억 원대의 사기성 CP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돼 모두 유죄가 인정됐다. 사기 범죄에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더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그룹 지배권에 집착해 방만 경영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긴 대기업 총수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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