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이래 욕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은 김일성일 것이다. 그러면 두 번째로 많은 욕을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프로축구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일 것이다. 몇 년 전 방송에서 황 감독이 대표 선수 시절을 회고하며 스스로 한 말이다.
황 감독이 맡았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스트라이커는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두려워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스포츠에서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횡횡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축구대표팀이 패배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가 득점 찬스에서 골만 성공시켰더라도…”다. 여기서 ○○○은 당연히 득점 찬스가 집중되는 스트라이커의 이름이다.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 등으로 이어져 온 한국 축구대표팀 스트라이크 계보에서 유독 황 감독이 가장 많은 욕을 먹은 데는 이유가 있다. 약관인 20세에 대표팀에 전격 발탁된 황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무려 14년 동안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그보다 나은 스트라이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6년 부상으로 경기 출전이 불가능한 황 감독을 당시 박종환 대표팀 감독은 한 경기라도 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컵에 데려갈 정도였다. 14년 동안 황 감독에게 영광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욕을 먹을 때가 훨씬 많고 길었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이 끝나고 난 뒤에는 쏟아지는 비난에 1년 동안이나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황 감독이 떠난 자리를 메운 선수가 박주영이다. 2006년 대표팀에 처음 선발된 박주영은 황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대표팀 스트라이커로서 영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자책골과 역전골로 비난과 칭찬을 함께 받았던 박주영은 2년 뒤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선제골로 영웅이 됐다. 그러나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승선을 놓고 또다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박주영이 8년째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것은 황 감독처럼 그보다 더 나은 스트라이커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 감독이 한일 월드컵에서 했던 것처럼 박주영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골을 넣으며 한국팀의 승리를 이끈다면 더이상의 비난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 실수라도 한다면 박주영은 1994년 황 감독이 겪었던 것을 똑같이 경험할지 모른다. 비난론자들의 유일한 근거는 비겁한 결과론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거 류현진과 추신수에게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욕을 쏟아내는 것이 그들이다.
축구대표팀의 스트라이커로 그 역시 한때 상당한 욕을 먹었던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최근 “한국에서는 영웅이 등장하기 힘들다. 홍명보 감독님은 선수로 4번의 월드컵에 나갔고, 감독으로 청소년대표팀, 올림픽, 지금 월드컵까지 24년 동안 한국 축구의 위상을 올리신 분이다. 한국 축구의 영웅이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이토록 헌신하고 노력하신 분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영웅이라도 수면 위로 올라오면 깎아내리기 바쁘다”고 꼬집었다.
맞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전문성이 전혀 없으면서도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비난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경제 전문가, 정치 전문가라고 자부하던 자칭 전문가들이 브라질 월드컵 때는 스포츠 전문가로 돌변해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을 얼마나 비난할지 벌써부터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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