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배금자]세월호 범죄 혐의자 신원 공개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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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생명 잃게한 선원들 얼굴 가려주고 이름 미공개
2009년 대법원 판례 ‘중대범죄거나 공익 연관 땐 실명보도 가능’ 기준 제시
살인죄 기소된 선원들 개인 인격권 보호보다 국민 알권리-공익이 먼저다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15명이 기소돼 곧 재판을 받게 된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선장과 항해사 등 선원 4명은 형법상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살인 혐의가 무죄로 될 경우에 대비하여 예비적으로 형법상 ‘유기치사’ 혐의로, 나머지 11명은 유기치사 및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로 공소를 제기했다.

천인공노할 범죄 혐의자에 대해 수사본부는 선장의 얼굴과 실명만 공개하고 항해사, 조타수 등의 선원들에게는 마스크와 야구모자로 얼굴을 가려주고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언론도 그들을 ‘강모 씨’ ‘조모 씨’로만 보도한다.

피해 규모가 크고 사안이 심각하며 국가 사회적으로 충격과 혼란을 준 중대 사안에서 다수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보다 범죄 혐의자 개인의 인격권(초상권, 성명권, 프라이버시권)을 더 두껍게 보호하는 수사기관의 안일한 태도는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수사기관이 피의자 신원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법무부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과 경찰청의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이다. 행정청의 내부규칙에 불과한 ‘훈령’으로 국민에 대해 법규적 효력이 없음에도 수사기관은 이 훈령 기준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공적 인물인 경우에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사인(私人)인 경우에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하는 예외적인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공개한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강력 사건 피의자의 얼굴 실명 및 나이 등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사유로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한 성폭력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도 이와 유사하다.

훈령의 기준을 따르면 공적 인물이 아닌 사인인 경우, 특정강력범죄(살인 인신매매 강간 강도 등)나 성폭력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한 아무리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가 다수라 하더라도 신원을 공개하지 않게 돼 있어 문제다. 신원공개는 위 특별법과 같이 법률상 명문 규정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신원공개는 소년법과 같이 보도를 금지하는 법률의 규정이 없는 한, 대법원 판례에서 정한 기준에 의거해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훈령으로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공익에 반하는 일이다.

대법원은 1998년 범죄 사건의 보도는 공공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나 범죄 혐의자에 관한 보도는 반드시 범죄 자체에 관한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해 익명보도를 원칙으로 했다. 이 때문에 언론은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만 보도할 수 있지 ‘그들이 누구인지’는 보도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09년 대법원은 사인의 경우에도 피의자의 명예나 사생활 비밀 유지로 인한 이익보다 실명보도로 인한 공공의 정보에 대한 이익이 우월한 경우 실명보도가 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사회적으로 고도의 해악성을 가진 중대한 범죄거나 사안이 공공에게 중요성을 가지거나 공공의 이익과 연관성이 있는 경우 등에는 실명보도를 할 수 있다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이 변경된 대법원 판례를 반영하지 않고 신원공개 대상을 아주 좁게 운영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승객 대피의무에 대한 주요 책임자 4명과 선장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한 마당에 훈령에 따르더라도 공개 대상이 돼야 한다. 현재의 대법원 판례에 의하더라도 세월호 범죄 혐의자의 신원은 공개될 수 있다. 국민적 피해가 막중한 사안에서 범죄 혐의자의 얼굴을 가리고 이름도 공개하지 않는다면 혐의자 개인의 사적 이익은 보호되겠지만 더 큰 다수 국민의 알권리, 언론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은 무시된다. 범죄 혐의자에 대한 신원공개 기준을 개별 법률에서 범죄 유형별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일반 법률에서 포괄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baesan0708@gmail.com
#세월호#인격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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