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구현]‘거래 부패’가 심각하다

  • 동아일보

건설 조선 유통 제조업 시장납품 관련 뇌물-뒷돈 광범위
거래부패는 기업경쟁력 좀먹고 막대한 지하경제의 원천
국가-국민에 심대한 피해 초래
기업들 지배구조 강화해 청렴한 기업문화 만들고
비리 엄격하게 감시-처벌해야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지난 석 달 동안에만도 기업 거래와 관련된 부패 사례가 여러 건 신문에 보도되었다. 보도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 1: 부산지법은 A사로부터 수출 원전용 디젤발전기 등의 납품 대가로 17억 원의 뇌물을 받은 B국영기업 부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35억 원을 선고했다.(1월 11일자)

사례 2: C통신회사 자회사 직원이 통신장비를 납품받은 것처럼 문서를 위조하여 3개 은행과 10개 저축은행으로부터 2300억 원의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2월 6일자)

사례 3: D은행 도쿄지점 지점장과 직원이 2007∼2010년 1467억 원을 불법 대출해 준 혐의로 기소되었다.(3월 20일자)

이들 사례 외에도 건설업, 조선업, 유통업, 조립제조업 등 여러 업종에서 납품과 관련된 뒷거래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뇌물과 부패는 주로 공무원이나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되었으나, 이제는 시장 거래에서의 부패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제도를 보완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서 ‘거래 부패’란 ‘시장 거래에서 사는 쪽이 파는 쪽에서 받는 뇌물이나 뒷돈’을 가리킨다.

‘거래 부패’는 효율 저하, 지하경제의 확대, 더 나아가 국민의 안전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시장은 더 싸고 품질이 좋은 제품이 선택될 때 제대로 작동하는데, 이런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면 경제의 효율성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구매 부서의 비리가 심각한 기업은 결국 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품질이 저하되어 경쟁력이 약화되고 고객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물이나 뒷거래는 지하경제의 원천이 된다. 2010년 조세연구원 보고서는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17.1%로 추정하고 있고, 외국의 어느 연구자는 이보다 더 큰 27%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의 매출액이 부가가치의 4배 정도이고 거래 부패 규모가 거래액의 2∼3% 수준이라고 가정할 경우, 이는 지하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고 볼 때 우리의 경우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거래 부패는 사회의 공평성과 신뢰를 심각하게 저해하며 또한 식품과 같이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산업이나 국방, 사회간접자본과 같이 국가 안보에 긴요한 분야에서 확대되면 국가 및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게 된다. 위 보도에서 소개한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비리가 좋은 예이다. 만약 우리가 거래 부패를 상당히 축소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경제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제 규모가 확대되며 재정건전성이 강화될 것이다.

지난 25년간 한국은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같은 제도 개혁을 통해서 부패가 다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자금이 많이 투명해졌으며, 정부 일선 창구에서의 사소한 뒷거래도 크게 줄어든 것 같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의 부패 정도를 비교해서 발표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부패 수준은 중간 정도로, 조사 대상 177개국 중 청렴도 순위가 46위였다. 기업의 부패를 나타내는 해외뇌물지수에서도 28개국 중에서 청렴도 순위가 13위였다.

기업 간 거래에서 뒷거래의 유혹은 항상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결책은 윤리의식을 높이고, 감시를 강화하며,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또 기업의 지배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취약하고 최고경영자(CEO) 자신이 부패하거나 권한이 없어서 이해관계자와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회사 전체의 규율을 확립하기가 어렵다. 소위 공기업에서 거래 부패가 더 심한 것은 CEO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의 규율이 약하면 청렴한 기업문화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업의 약한 지배구조와 기업 내 부패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윤리강령’을 선포해 사원들의 경각심을 높이고, 매년 ‘준법서약서’를 통해 비리가 있을 때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서약을 받아야 한다. 의도적인 뇌물수수에 대해서는 회사와 국가가 모두 가혹할 정도의 처벌을 해야 사회 전체의 기강이 설 것이다.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로 보아 이제는 거래 부패의 심각한 폐해를 제대로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대처해야 할 시점이다.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지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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