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과학특성화대학으로 주목받는 UNIST 조무제 총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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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5년 성과, 과학기술원으로 전환해 더 키우고 싶다”

조무제 UNIST 총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총학생회 신임 간부들과 함께 학술정보관 앞 다리를 건너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UNIST 캠퍼스에는 이런 다리가 9개(나인브리지)나 있는데 이름은 없다. 이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수상자의 이름을 붙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 UNIST 제공
조무제 UNIST 총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총학생회 신임 간부들과 함께 학술정보관 앞 다리를 건너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UNIST 캠퍼스에는 이런 다리가 9개(나인브리지)나 있는데 이름은 없다. 이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수상자의 이름을 붙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 UNIST 제공
한국 대학이 벼랑에 섰다. 역사와 전통, 규모조차 무력해졌다. 그 결과가 통폐합과 정원 감축 압력이다. 합치고 줄이기만 하면 되나. 그것도 아니다. 고민 끝에 나온 대책이 선택과 집중, 특성화다. 앞이 채찍이고, 뒤가 당근이다. 대학도 무풍지대에서 북풍한설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2009년 3월에 개교한 UNIST(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대)를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이 대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하는 대학상(大學像)에 제법 근접했기 때문이다. 개교한 지 불과 5년, 역사와 전통에 기댈 일이 없다. 학부생 3300여 명에 대학원생 750여 명(2014년 3월 기준)으로 크지도 않다. 그에 반해 문을 열기 전부터 작지만 강한 특성화 대학을 표방했다. 문제는 성과. 지난달 21일 조무제 총장(69)을 만나 개교 5년에 대한 평가부터 들어봤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30년에 세계 10위권의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UNIST 비전 2030), 지금대로라면 꿈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립자나 다름없는 임명직 총장

이 평가가 너무 장밋빛인지는 제쳐두고 이 질문은 조 총장에게 할 수밖에 없다. UNIST는 국립대 법인으로 그는 임명제 총장이다. 하지만 사립대로 치면 설립자나 마찬가지다. 2007년 9월 초대 총장이 돼 그해 11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허허벌판에서 기공식의 첫 삽을 뜬 것도 그였다. 2011년 9월 총장에 연임됐다. 대학의 비전과 교육과정 설계, 신입생 유치와 교수 초빙 등에 그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설립자’라기보다는 ‘설계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조 총장은 5년간의 성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수한 학생, 유능한 교수, 괄목할 만한 연구업적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실제로도 그럴까. 신입생들은 고교 성적 상위 2.5% 이내이고 교수 220여 명(평균나이 40.5세)의 3분의 2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탠퍼드대,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옥스퍼드대 등 세계 명문대 출신이라고 한다. 첫 신입생을 뽑을 때 정원은 1000명이었지만 학교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500명만 선발했다. 시간강사는 1명도 없다.

―기반은 갖춰진 것 같다. 구체적인 성과는 무엇인가.

“2차전지와 수소연료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 그래핀과 연성물질 등 첨단 신소재 분야, 줄기세포와 안티에이징 등 바이오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2차전지는 MIT, 스탠퍼드대와 함께 세계 톱3 수준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IBS) 외국인 사업단장 3명 중 2명이 우리 대학 소속이라는 것도 우리가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국내 유일의 100% 영어강의 대학


조 총장이 언급한 3개 분야가 UNIST의 ‘선택과 집중’이자 ‘미래의 먹거리’다. 차세대 에너지 분야는 이미 도전받는 입장이고, 첨단 신소재 분야는 강력한 도전자이며, 바이오 분야는 도전할 준비를 마쳤다고나 할까.

이런 성과를 가능케 한 게 최첨단 공동연구시설(연구지원본부·UCRF)이다. 기기 구입비 1800억 원 중 800억 원을 이곳에 집중 투자했다. 각종 시설과 첨단 기기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지만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공동연구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설명은 사실인 것 같았다. 복도 벽에는 이곳에서 나온 연구 결과를 게재한 세계 유명 저널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2012년 NPI(네이처와 17개 네이처 자매지에 게재된 논문지수) 순위에서 국내 대학 9위에 올랐다. 우수한 학부 졸업생에게 연간 3000만 원씩을 주며 국내 대학원에 진학시키는 ‘글로벌 Ph.D 펠로십’에도 14명이 선정됐다. 6위다. 신생 대학으로는 자랑할 만한 기록들이다.

―UNIST는 어떤 인재를 원하나.

“창의, 융합, 글로벌을 지향한다. 토론식 수업과 2개 전공 의무화, 전 강좌 100% 영어강의는 각각의 수단이다. 전 강좌 100% 영어강의는 국내 대학 중 유일하다.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 부작용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다. UNIST에는 28개국에서 110여 명의 외국 학생이 와 있는데 영어강의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저개발 자원부국 우수 학생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이들이 모국의 리더가 되면 한국의 국익 확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지난해 3월 UNIST 제1회 졸업식. 졸업생 175명 중 90%가 대학원에 진학해 ‘따뜻한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지난해 3월 UNIST 제1회 졸업식. 졸업생 175명 중 90%가 대학원에 진학해 ‘따뜻한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UNIST는 전공 구분 없이 모집해서 2학년 때 9개 학부, 20개 전공 중에서 2개 전공을 선택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교수도 반드시 2개 이상 학부에 속해야 한다. 융합을 위해서다. 의외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성교육도 중시하고 있다. 시험은 무감독이고, 먼저 인사하기 등 예절교육과 사회봉사활동도 독려한다. 조 총장은 “진정한 글로벌 리더는 훌륭한 인성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따뜻한 과학자’를 배출하고 싶은 듯했다. 지난해 1회 졸업생 175명 중 90%가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80%는 UNIST를 택했다.

과기원 되면 연구중심大로 더 도약

―울산 시민들이 처음에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성화대학보다는 종합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했고 울산시가 세금으로 대학 지원을 약속한 점, 울산 출신 고교생들에 대한 혜택이 별로 없다는 점 때문에 냉담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소득 1위 울산에서 가장 약한 게 교육이었는데 UNIST가 채워주고 있다며 분위기가 많이 호전됐다.”

UNIST의 주춧돌은 울산 시민이 놓았다. 16개 광역시도(개교 당시) 중에 왜 울산만 국립대가 없느냐는 불만이 동인이었다. 국립대 유치에는 성공했으나 대학의 형태는 견해차가 컸다. 조 총장은 박맹우 울산시장과 의기투합해 종합대가 아닌 과학기술 중심의 특성화대학으로 방향을 크게 틀었다.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는, 그렇고 그런 국립대 중 하나가 되긴 싫었다”는 게 조 총장의 변이다.

울산시는 매년 150억 원씩, 울주군은 매년 50억 원씩 UNIST를 지원하고 있다. 기간은 10년.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의 공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래서 조 총장은 UNIST가 갖고 있는 기술과 지식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평상시 공동연구시설을 지역 기업에 개방하고 공동연구도 권장한다. 2차전지 연구의 권위자인 조재필 교수(2013년 인촌상 수상)가 개발한 스마트폰 배터리의 수명 연장 기술을 울산의 세진이노테크에 이전하고 64억 원을 받은 일은 산학협력의 대표적 사례로 전국적인 뉴스가 됐다.

UNIST의 요즘 최대 현안은 과학기술원으로의 위상 변경이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GIST(광주과학기술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처럼 되겠다는 것이다. ‘울산과학기술대학교’가 아닌 ‘UNIST’를 공식 명칭으로 쓰고 있는 것도 ‘-IST’가 붙는 다른 과학기술원과 경쟁하고 글로벌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법안은 이미 국회에 올라가 있다.

새 연구단지로 ‘UNIST 밸리’ 꿈꿔

―꼭 과학기술원이 될 필요가 있나.

“우리는 지금 손발이 묶인 채 다른 과학기술원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원이 되면 교육중심이 아닌 연구중심 대학으로 바뀌고 학생들도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산도 교육예산이 아니라 연구예산을 받게 돼 액수도 늘고 배정받는 일도 수월해진다. 산학협력 프로젝트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런 메리트를 포기할 수 없다.”

조 총장은 과학기술원 전환과 2000억 원짜리 새 연구단지 건립(2016년)으로 ‘UNIST 밸리’를 꿈꾸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제2의 개교’라고 말한다. 5년밖에 안 됐는데 ‘제2’ 운운하는 것이 그렇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는 조 총장의 ‘욕심’이 엿보인다.

얼마 전 교육부가 1조 원의 지방대 육성책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특성화대학’을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UNIST는 미래창조과학부 관할이어서 관계가 없지만 일찌감치 ‘특성화’로 방향을 정한 UNIST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또 다른 근거는 될 듯하다.

그렇다면 UNIST는 성공했는가. 평가는 아직 빠르다. 그렇다고 어제의 영광을 곶감처럼 빼먹으며 연명하려는 대학들과 비교하는 것도 옳지 않다. UNIST의 5년은 적어도 한국의 대학이 어떻게 살길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모델, 새로운 리더십은 보여줬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지역의 맹주였던 기존의 국립대들이 법인화를 두려워하며 ‘불확실한 안정’을 택했을 때 ‘국립대 법인 1호’로서 ‘불확실한 가능성’에 도전했던 UNIST의 20년, 30년 후에 관심이 있다.

UNIST 캠퍼스 내에는 ‘가막못’이란 연못이 있다. 그 위에 9개의 다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름이 없다. 이 대학에서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나오면 수상자의 이름을 붙여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유니스타(UNIST 학생)의 어깨가 무겁다. 총장과 교수진의 어깨도 무겁다. 그러나 미래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해야 할 UNIST 구성원의 머리는 더 무겁다.

인터뷰=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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