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1월 한 달만이라도 막말 없는 정치의 모습을 국민 앞에 약속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야 지도부를 향한 제안이다. 안 의원은 ‘사람은 모두 입안에 도끼를 갖고 있다’는 법정 스님의 말을 인용한 뒤 “새해에는 (정치권에서) 상호 비방부터 없었으면 좋겠다”며 이것이 가장 쉬운 실천이라고 말했다.
본보는 잘못된 언어생활을 바로잡아 사회의 품격을 높이자는 취지로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제목의 새해 연중 기획을 시작했다. 본보 기획에 안 의원이 바로 호응한 것은 정치권 막말의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일 것이다. 한글학자 주시경은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의 일이 다 거칠어진다”고 말했다. 이 말에 요즘처럼 공감이 가는 때가 없다.
국회의원이 여성 대통령을 향해 ‘그×’이라는 말을 쓰고 국회에서 의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닥쳐 이 ××야” “너 인간이야? 난 사람으로 취급 안 해”라고 퍼붓는 것이 작금의 정치 현실이다. 굳이 새 정치를 들먹일 것도 없다. 막말하는 정치는 헌 정치도 못 된다. 옛 정치인의 말 속에는 격조 있는 비유와 풍자가 있었다. 막말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싸움일 뿐이다. 갈등을 풀기는커녕 더 얽히게 할 뿐이다.
민주주의는 말의 정치다. 멱살 잡고 싸울 일도 말로 풀어가는 것이 민주사회의 정치다. 지난해 6월 국회법 개정으로 의원직을 걸지 않고는 폭력 행사가 어려워져 국회 폭력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른바 ‘국회의원 막말 금지법안’이 발의됐다는 얘기만 있었지 이후 진행 과정은 어찌 됐는지 감감무소식이다. 더욱이 이 법이 통과돼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지금처럼 정략에 끌려 다녀서는 징계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프랑스 하원 의사규칙은 의원을 모욕·위협한 의원은 주의를 받고, 의회나 의장을 모욕하면 견책과 함께 일정 기간 의사당 등원을 금지한다. 미국 하원은 인신모욕적 발언을 금지하고 있다. 국회가 막말 의원을 막지 못하면 유권자 감시로 막을 수밖에 없다. 본보는 지난해 9월 국회 회의록 검색시스템을 통해 19대 국회 개원 이후 회의록에 실린 의원들의 막말을 조사해 발표했다. 국민이 막말하는 의원을 기억했다가 선거에서 떨어뜨리는 나라가 민주주의 선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