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동용]정치인의 달걀·케첩 봉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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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4일자 국내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한 사진은 지금 봐도 충격적이다. 얼굴과 양복 상의가 계란과 밀가루로 하얗게 뒤범벅이 된 채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 서리. 자신이 강의를 맡았던 한 대학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운동권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전투경찰에 폭행당해 숨진 뒤 두 달여 이어진 시위 정국에서 발생한 불상사였다.

▷정치인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던지는 물건으로는 역시 계란이 대표적이다. 크게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도 창피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 제격이기 때문일 터다. 200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이회창 후보는 머리에, 이명박 후보는 경기 의정부시 유세에서 가슴과 허리에 계란을 맞았다. 1999년 6월 일본에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수속을 밟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빨간색 페인트를 넣은 계란을 얼굴에 맞았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2007년 12월 이라크를 깜짝 방문했다가 신발에 맞을 뻔했다. 기자회견 도중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에 항의하는 기자가 “이라크인이 주는 작별 키스다”라고 외치면서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던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재빨리 몸을 숙여 피했고 신발은 간발의 차로 빗나갔다. 이라크 같은 이슬람권에서는 신발을 던지거나 신발로 밟는 것이 심하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행사장에서 20대 남성이 뿌린 토마토케첩에 얼굴 일부와 양복 상의를 맞았다. 이 남성은 케첩을 뿌리며 “삼성 반대”라고 외쳤다는데 정확한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안 의원이 경험한 첫 봉변일 것이다. “가시밭길을 가겠다”며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지만 그가 얘기하는 ‘새 정치’는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북한 김정은의 속마음과 함께 3대 불가사의로 불린다. 여전히 구름 위에 사는 것 같다고 입방아를 찧는 사람들도 있다. 케첩 봉변이 그에게 현실정치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민동용 정치부 기자 mindy@donga.com
#정치인#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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