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이동흡 전 운전사의 진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이기홍 사회부장
이기홍 사회부장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끝까지 버티기로 마음을 굳힌 듯 하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의혹이 제기되자 표연히 물러난 것과 대조적이다. 사실 제기된 의혹과 흠결의 경중을 비교해보면 저울이 필요없을 정도로 김 후보자 쪽이 경미했다. '남자의 처신'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후보자가 버티기로 한 것은 어떻하든 결과적 승자가 되어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일 것이다. 인수위와 청와대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 핑퐁게임을 보며 어부지리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톨게이트까지 운전후 차 넘겨줘”

박근혜 당선인이 '이동흡 카드'를 철회하지 못하는건 두가지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 지명 철회가 정치적 상처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야말로 기우(杞憂)다. 선진국에서도 장관 후보들이 낙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09년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때도 그랬다. 하지만 오바마가 원했던 인물이 낙마한다고 해서 오바마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자신이 꼭 필요로 했던 인물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분석이 나올뿐이다.

박 당선인이 진짜 정치적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은 국회 표결까지 가서 부결되는 경우다. 보안의 필요성과 인재풀의 협소함을 감안할 때 피지명자의 예상치 못했던 흠결이 드러나는 것은 병가지상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알고서도 철회하지 않았다면 이는 고집불통이라는 나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둘째, 박 당선인 측은 '이동흡 카드' 철회가 헌법재판이라는 보수주의의 보루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를 했을 수 있다. 이 역시 착각이다. 이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이나 문제점은 23가지 가량된다. 이중 본인이 인정한게 대략 6가지다. 그중에서 위장전입처럼 과거 시대의 관행이었던 것은 거론하지 않고 싶다. 하지만 해외출장에 부인 동반, 홀짝제 관용차 요구, 헌법연구관들과 공저한 저서를 단독 저자로 표기하는 것 같은 행태들은 그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음을 웅변해준다. 보수가 아니라 지위의 사유화이며, 군림이며, 봉건적 권위주의다.

보수주의는 공동체 가족 국익 미래 전통 원칙에 가치를 두는 이념이다. 개인의 자유, 당장의 복지, 평화를 중시하는 진보에 비해 더 장기적 호흡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의 리더가 되려면 솔선수범, 신독, 자기관리, 겸손, 배려가 필수적이다. 그런 덕목이 부족한 사람을 포기한다고 해서 보수의 패배로 여길 국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이비 보수와의 차별화로 여길 것이다.

이동흡 논란을 종결짓기에 앞서 국회가 반드시 진위를 확인해야 할 대목이 하나 있다.

"당신은 왕처럼 생활하였지만 토요일에는 반드시 귀경하는 주말부부였습니다. 당신은 직원에게 승용차를 운전하게 하여, 고속도로 톨게이트 옆에서 차를 넘겨받았습니다. 그후 운전원은 30분 가까이 위험한 도로를 걸어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곳은 택시를 타기도 여의치않고, 유성까지 가서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14일 나주등기소 6급 직원 김대열 씨가 법원 인터넷에 실명으로 올린 글의 일부다. 필자는 그 글을 읽고 '설마'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실명 글이어서 묵과할 순 없었다. 전국 취재망을 가동해 진위확인에 나섰다.
김 씨는 본보 기자에게 "대전에서 근무할때 당사자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자가 1998~2000년초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의 비화를 나중에 회식자리에서 들었다는 설명이다. 취재팀은 해당 운전기사를 찾아냈다. 현재 모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A 씨다. 그는 지난달 본보 기자가 찾아가자 "그런 일 없었다"고 부인했다. 지난주에는 "왜 기자가 나를 찾느냐"며 화를 냈다. "이동흡 씨 문제로 왔다"고 하자 "누구요?" "이동흡이 누군지 몰라요"라며 본보 기자를 사무실 밖으로 밀어내다시피 했다.

국회서 진위 확인 나서야

A 씨가 부인하므로 김 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50대 연령대의 기능직 공무원인 A 씨에게 함구령이 내려졌을 것이라는 법원 노조 관계자들의 말도 개운치 않다.

본보 취재팀이 확인할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이제 국회가 당시 이 후보자와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을 불러 진위를 확인해주기 바란다. 위증죄의 엄중함을 아는 법원 직원들이 국회에서 위증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이 의혹이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확인되면 이 후보자를 겨냥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됐던 공세의 배후에 좌파 이념세력이 있었을 가능성을 의심해볼 수도 있다.

김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기에 말을 덧붙이는건 사족(蛇足)이 될 것 같다.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이동흡#헌법재판소장 후보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