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마음속 원숭이를 잠재우고 싶을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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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1663년·캔버스에 유채·62.2×109.5cm)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레몬,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1663년·캔버스에 유채·62.2×109.5cm)
영화로도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은 안정된 직장, 맨해튼의 고급아파트, 번듯한 남편까지 가진 저널리스트이지만 깊은 내면적 방황에 빠진다. 일, 가족, 사랑을 뒤로하고 부서진 영혼을 수선하기 위해 1년간 여행을 떠난다. 두 번째 여행지인 인도에서 명상수련을 시작하지만 마음 집중은 어렵기만 하다.

《‘나는 불교에서 원숭이 마음이라고 말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내 생각은 많은 가지 사이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과거에서 미래까지의 시간을 모조리 파헤치고 천방지축 옮겨 다닌다. 오직 몸을 긁거나 소리를 지를 때만 멈춘다.’(‘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길버트처럼 ‘마음속 원숭이’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이 극성스러운 마음의 훼방꾼을 몰아낼 방법을 절실하게 찾게 된다. 17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그림을 감상하면 원숭이 떼에 시달리던 마음이 평온한 은신처로 바뀌는 신비를 경험한다. 배경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고 탁자 위에는 레몬 4개가 담긴 은쟁반, 오렌지가 담긴 버들가지 바구니, 분홍 장미가 놓인 찻잔이 직선으로 배치되었다. 엄격한 기하학적 구도와 친숙한 소재들이 정결하고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는 ‘수도사의 화가’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데 많은 그림을 수도회를 위해 그렸기 때문이다. 이 그림도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하다. 레몬은 부활절과 관련된 과일이고, 오렌지 꽃은 순결, 찻물이 채워진 컵은 깨끗함, 분홍 장미는 동정녀 마리아를 상징한다.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앙심이 없는 사람도 스스로 침묵의 울타리를 만들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신이 마음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마음속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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