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일본은 어떤 국가인가

  • Array
  • 입력 2012년 9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몇 해 전, 전직 일본 외무성 고위관리를 초청해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듣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이라면 일본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좁게는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고 넓게는 동아시아의 안정과 통합을 저해하는 북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

물론 그의 개인 의견이었고 논쟁이 일기도 했지만, 그 내용과는 별개로 귀에 신선하게 와 닿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일본을 ‘탈근대국가’라고 규정한 부분이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전근대국가, 중국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국가, 한국은 근대에서 탈근대로 이행하는 국가, 그리고 일본은 탈근대국가다.

논의의 초점이 아니라서 그가 어떤 근거로 일본을 탈근대국가로 규정했는지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아마 탈근대국가의 전범(典範)을 보여주는 서유럽 국가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일본은 과연 탈근대국가인가? 탈근대국가란 어떤 국가인가?

사실 탈냉전이니 탈근대니 할 때 탈(脫)이란 소극적이고 불확정한 개념으로 내용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탈근대국가를 말하려면 근대국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日 과거 잘못 인정안해 주변국 불신


근대국가란 바로 오늘날 대표적 국가 유형으로 주권, 국민, 영토를 3대 구성요소로 한다. 그래서 근대국가는 주권국가이고, 국민국가이며, 영토국가이다. 주권국가란 나라 안팎에서 국가가 최고의 권위와 권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국민국가란 그 주권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뜻이며 영토국가란 국민의 지리적 범위를 한정한다. 그런데 그 국민의 현실적 범위가 분명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근대 정치사는 바로 국민의 내포와 외연을 둘러싸고 전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으로 주권의 주체인 국민의 범위가 소수의 특권층에서 모든 사람으로 확산되는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은 때로는 혁명적으로, 때로는 점진적으로 전개됐지만, 20세기 전반에 이르러 모든 사람이 참정권을 가지게 됐다. 이 측면에서 국가의 근대화는 곧 민주화이며 근대화가 통상적으로 가지는 긍정적 의미와 부합한다.

밖으로 국민은 곧 민족이다. 내 나라와 남의 나라를 나누고 차별하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나타났다. 정치 공동체인 국가의 영토와 문화·종족 공동체인 민족의 거주지가 일치하지 않았던 중·동유럽에서는 민족을 중심으로 국경을 새로 그렸다. 독일 이탈리아 같은 분단민족은 통합되고 오스트리아 터키 같은 다민족국가는 분열의 몸살을 앓았다. 그것이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을 낳았다.

이후 일부 국가에서 근대국가의 극단적 변형이 나타났다. 민족을 신격화하고 개인을 그에 종속시키는 전체주의, 곧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이 그것이다. 그 신격화된 민족의 영광을 위해 다른 국가·민족을 침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근대국가의 파괴적 측면이다. 탈근대국가가 복음처럼 들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근대국가의 원형을 제공한 유럽의 변환은 과연 탈근대적이라고 할 만하다. 단일 화폐와 공동의 외교정책으로 주권성이 약화됐다. 물자와 인구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면서 영토성이 약화됐다. 사람들은 한 국가의 국민을 넘어 유럽인으로서 정체성을 함양하고 있다. 그 같은 변환에는 많은 요인이 있지만 유럽의 국가들이 근대국가로서 성숙하고 특히 독일이 철저한 자기반성과 변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안정된 민주주의를 누리고 한류 등 외국 문화에 열광하며 국제 기여에 열심이라고 해서 탈근대국가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턱없는 독도영유권 주장처럼 남의 영토를 탐내는 나라가 탈근대국가일 수 없다. 게다가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곧 신격화된 민족의 무결성(無缺性)에 집착하고 있는바 이는 근대국가의 가장 파괴적 유형인 파시즘의 뿌리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이 오랫동안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막대한 개발원조를 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소프트 파워가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즉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싫어하거나 경멸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자기반성 통해 거듭나야


그뿐만 아니다. 일본의 이웃들은 일본을 경계한다. 과거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곧 그것을 다시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정상 국가’를 추구한다면 그 정상 국가란 다름 아닌 파괴적 근대국가, 곧 군국주의의 부활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이 진정 ‘정상 국가’이고 싶다면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국가의 정체성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 파괴적 근대국가의 속성을 털어내고 성숙한 근대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 동아시아의 탈근대적 변환을 논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동아광장#김태현#일본#한일관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