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화학적 거세’ 대신 ‘약물치료’라고 써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성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딸 가진 부모는 물론이고 어머니나 누나가 귀가하기 전까진 마음을 못 놓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현행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은 16세 미만 아동에게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만 ‘화학적 거세’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시행 이후 대상자가 1명에 불과할 만큼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다. 새누리당은 가을 정기국회에서 법을 개정해 모든 성범죄로 확대하겠다고 그제 발표했다. 정부는 어제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 확대를 적극 검토하겠다면서도 새누리당의 전면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며 반대했다.

16세 미만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일삼는 사람은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라고 보아야 한다. 화학적 거세라는 용어가 외과적 거세(去勢)를 연상시켜 거부감을 자아내지만 실은 약물로 성 충동을 억제하는 ‘치료’에 해당한다. 석 달에 한 번 주사나 먹는 약으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해 강박적 성적 욕구나 환상을 없애준다. 2010년 이 법이 통과될 때는 화학적 거세라는 표현이 징벌적인 느낌을 줘서 여론의 지지를 받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그 용어로 인해 ‘과도한 처벌’ ‘인권 침해’라는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듯하다.

성범죄는 성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벌어지는 병적이고 반복적인 일탈행위다. 약물로 성 충동을 다스리면 재범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미국 오리건 주에서는 2000∼2004년 성범죄자 134명 가운데 약물치료를 받은 경우 재범자가 한 명도 없었던 반면 약물치료에 불응한 사람의 재범률이 20%나 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유럽에서는 성범죄자 약물치료가 거의 보편화돼 있다.

정부는 성범죄 고위험 전자발찌 대상자를 매달 4, 5차례 면담하고, 이들의 이동 경로와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전담 인력을 두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성 충동에 사로잡힌 성범죄자에게는 전자발찌도 목욕탕 열쇠고리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거부감을 주는 화학적 거세라는 용어 대신 ‘약물치료’라는 말을 쓰면 반대 의견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현행 규정으로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수형자들이 원할 경우 별도의 절차를 거쳐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다. 범법자의 인권 침해와 관련해 비판도 나오지만 아동이 당한 성폭력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내면의 상처를 남긴다. 구제 불능의 성도착자들에게 약물치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설#성범죄#화학적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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