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복지공약을 지켜야만 대선을 치를 수 있다”는 새누리당과 “그런 식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지킬 수 없다”는 정부가 충돌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말 야당과 함께 ‘0∼2세 전면 무상보육’을 강행해 올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고갈시켰다. 여당 소속 구청장의 입에서 “무상복지 포퓰리즘이 지자체 재정을 바닥냈다”는 한탄이 나오는 판이다. 정부 쪽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선별 무상보육으로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자 엄마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새누리당은 정부에 6000억 원을 지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약을 정부가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새누리당은 4·11총선에서 이미 102개에 이르는 재정지출 공약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보육비 지원 확대와 사병 월급 인상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특히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19대 국회의원들은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줄 법안을 20여 개나 발의해 놓고 있다. 연말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각종 복지 공약이 판을 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의 고령화로 향후 복지예산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복지제도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2050년이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9%로 남유럽과 같은 상황이 된다. 그리스 위기는 방만한 복지 정책에서 비롯됐다. 우리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복지 정책을 쏟아내면 국가 재정이 견뎌낼 수 없다.
경제학자나 경제 관료로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말을 바꾸고 있는 것도 개탄스럽다. 새누리당 안종범 류성걸 의원은 국회 입성 전까지 건전 재정을 주장하던 전문가였으나 19대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0∼2세 무상보육 축소’ 안을 내놓은 기획재정부를 질타하는 선봉에 섰다. 안 의원은 올해 5월만 해도 “복지 정책은 잘못 정하면 영구화하므로 정부가 정치권의 무분별한 요구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르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취임사를 되새겨야 할 때다. 국정을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는 일이 차기 대통령선거를 5개월 앞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소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