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연금은 정부의 ‘쌈짓돈’ 아니다

  • 동아일보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이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대구부산고속도로 등 일부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낮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외곽순환도로와 인천공항철도 등 6곳은 지분의 절반 이상을 공공 부문이 보유해 사실상 공공기관이 됐다. 따라서 이용료를 정부 재정으로 지은 일반 고속도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부문의 지분이 절반을 넘었다고 해서 이용료를 낮춘다면 정부를 믿고 투자해 아직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민간 투자자들이 볼 손실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더 큰 문제는 ‘민자사업 지분을 보유한 공공 부문’의 명단에 국민연금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보장이 달린 소중한 돈이다. 수익률보다는 공공성을 우선시하는 재정과는 성격이 달라 수익률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이 투자 대상을 국내외 부동산 등으로 과감히 넓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국민연금을 강제로 공공투융자 사업에 끌어다 쓸 수 있도록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국민연금이 국고채에 투자했다가 사무 착오로 이자를 덜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는데도 노무현 정부 때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연금이나 세금이나 모두 국민 돈’이라며 별일 아닌 것처럼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연금 가입자들은 불안하다. 국민연금을 재정처럼 운용하라는 것은 노후를 위해 돈을 맡긴 국민보다 정부의 명분이나 필요를 우선시하는 잘못된 태도다.

국민연금 운용의 독립성, 지배구조의 정치적 중립성이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 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정부에서 완전히 독립할 필요가 있다. 국회 사무국 직원들은 공무원연금에 가입해 있다. 국민연금이 자신들의 노후와 무관하기 때문에 이런 보고서를 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2000만 명을 넘어섰다. 현행 제도대로라면 고령 국민에게 주는 연금 실질급여액은 2028년 기준으로 월 60만 원에 못 미칠 것으로 추산된다. 고령화 사회에 긴 노후를 지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용돈 연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 절반은 국민연금이 노후 대책의 전부다. 국민연금을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이나 네덜란드 공무원연금처럼 수익성과 안정성이 모두 좋은 연금기금으로 키워 국민의 실질적인 노후대책이 되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급#예산정책처#공공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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