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 직무대행이 ‘몸싸움 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우리 정치 현실과 맞지 않는 심각한 결함이 존재한다”라면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에게 재검토를 요청했다. 정 직무대행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눈은 떠 있지만 몸은 전혀 안 움직이는 록인(Lock-in) 신드롬처럼 국회도 마비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했고 24일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미국 상원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미국의 정치풍토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론(黨論)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 개별 국회의원이 소신껏 의사를 표시할 수 있고 거의 모든 의안에서 자유 투표를 한다. 의회 폭력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필리버스터 제도가 큰 부작용 없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셈이다. 우리처럼 의원이 거수기나 다름없이 당론에 복종해야 하고, 더구나 당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정치풍토에서는 이 제도가 입법 방해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국회에서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을 해도 이견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순리다.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각 정당이 굳이 다수당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 헌법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단순 다수결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대로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여야 간 이견이 심하고 야당이 당론으로 반대하는 법안은 19대 국회에선 사실상 처리가 불가능하게 된다.
국회 선진화는 입법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1차적 목적을 둬야 한다. 입법이 소임인 국회가 사사건건 소수당의 정략적 반대에 가로막혀 필요한 법을 제때 만들지 못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해머 전기톱 최루탄까지 동원해 폭력과 몸싸움을 일삼는 우리 국회의 고질병을 몰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몸싸움을 막겠다고 정상적인 입법 기능까지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 수는 없다.
여야는 멀리 보면서 국회의 선진화, 나아가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다듬어주기 바란다. 당장 의석수나 정치적 유불리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다수당이자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황우여 원내대표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금의 개정안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황 원내대표는 입법 생산성 실종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