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6일 한국외국어대를 방문해 1500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 국내외 귀빈 앞에서 특별강연을 했다. 한국외국어대로서는 60년 역사에서 가장 소중한 손님이었고 글로벌 리더의 꿈을 키우고 있는 2만여 재학생에게는 큰 힘이 됐다.
2009년 6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이집트 카이로대를 방문해 미국과 13억 이슬람 국가와의 화해를 제의한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해외 대학에서 세계인을 향해 핵테러 없는 세상을 위한 메시지를 전한 것은 이번 한국외국어대 연설이 그의 재임 중 행한 두 번째 역사적 강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물었다. 어떻게 한국외국어대가 선택됐느냐고. 해답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저절로 나온다. 그는 한국외국어대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외국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현대판 경제 기적을 가능하게 만든 외교관, 공무원, 비즈니스맨 등 지도자들을 배출했다고 평가했다. 필자는 단순히 외교적 수사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 오바마 대통령은 국력의 원동력은 창의적 교육이며 좁은 영토에 변변한 부존자원도 없는 대한민국이 오늘날 경제 강국이 된 것은 높은 교육열 덕분이라고 강조해 왔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은 한국외국어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350여 대학 전체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물음은 남는다. 특강 후보지로 추천된 유수의 대학 가운데 왜 한국외국어대였느냐고. 이에 대한 대답은 오바마 대통령의 삶과 말을 돌아보면 짐작하고도 남는다. 흔히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불리는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 대통령은 가히 세계의 대통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과 명예의 정점에 있는 그에게도 과거 삶에서 미련과 아쉬움이 있었을까? 물론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ABC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받고 “학창시절 스페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대답했다.
미국에서 히스패닉 인구는 흑인 인구를 앞질렀고 스페인어는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필수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후회는 단지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의식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는 스페인어든 프랑스어든 모든 미국인이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외국어의 중요성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에는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현실과 비전이 반영돼 있다. 필자가 오바마 대통령을 맞으며 대화를 나눌 때 그는 자신의 딸도 스페인어를 배우도록 해외 어학연수를 시켰다면서 제2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화시대에 외국어 능력은 필수의 생존 무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외국어 실력이 가장 약한 국민이 미국인이라고 한다. 빈약한 외국어 교육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고 심지어 국가안보가 위협을 받는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스페인어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실토하며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익히라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자 미국의 생존에 대한 자기 경고일 것이다.
이쯤 되면 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외국어대에 왔느냐고 묻는 분들의 궁금증이 풀릴 듯하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경제 강국이 된 것은 악착같은 교육의 힘 덕분이라고 확신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45개 외국어를 교육하는 한국외국어대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재확인하고 타자를 중시하는 소통의 능력도 동시에 확인했을 것이다. 역사적 한국외국어대 강연은 세계 평화를 강조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같이 갑시다”라고 외치는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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