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정희의 여론조사 경선조작은 ‘부정선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1일 03시 00분


서울 관악을 선거구의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에서 승리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캠프가 여론조사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누리꾼이 인터넷에 올린 휴대전화 문자 캡처 사진에는 ‘여론조사 긴급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 함’ ‘ARS 60대와 40∼50대도 모두 종료. 이후 그 나이대로 답하면 날아감’ 등이 적혀 있다. 문자는 이 대표의 보좌관이 보냈다. 이 대표 측이 지지자들에게 나이를 속여 응답할 것을 지시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다.

야권 단일화 경선은 ARS 여론조사와 임의전화걸기(RDD) 전화면접으로 절반씩 나눠 진행했다. 여론조사는 19∼39세, 40∼59세, 60세 이상으로 연령대를 나눠 실시했다. 조사 방식과 샘플 수만 공개했을 뿐 여론조사기관은 비밀에 부쳤다. 각 후보 측의 여론조사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출된 긴급문자대로라면 이 대표 측은 여론조사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지지자들에게 거짓으로 연령을 대답하라고 지시한 것이 된다. 부정선거에 준하는 여론조사 조작이다.

이 대표 측은 “담당자의 과욕으로 빚어진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이 대표의 보좌관 이외에 캠프의 다른 인사도 비슷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대표는 작년 최구식 의원의 비서가 연루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때 “혼자 했을 리 없다”고 몰아쳤다. 그런 그가 자신의 부정에 대해 관대한 것은 이중잣대다. 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이 사안을 어물쩍 넘긴다면 야권 단일화 경선 전체의 공정성이 도마에 오를 판이다.

진보당은 전국적으로 30곳에 야권 단일후보를 내는 데 성공했다. 비례대표 의석까지 합치면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달성의 꿈에 성큼 다가섰다. 그러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덮어둔다면 진보정당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이 대표가 민주당 김희철 의원과의 재경선 의사를 밝혔지만 김 의원은 거부했다. 재경선 주장은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덮으려는 술수다. 이 대표는 공인(公人)답게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민주당은 “야권연대는 유효하지만 진보당 등은 충격적인 사건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 대책없이 미적지근한 태도다. 이번 사건의 파문이 확산되면 안 그래도 흠집많은 민주당의 모바일 경선제도에도 타격이 클 것이다. 민주당이 야권 연대를 의식해 부정선거 의혹 덮기에 동참한다면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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