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뉴욕의 9·11과 후쿠시마의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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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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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10년 간격을 두고 일어난 9·11테러(2001년)와 3·11 동일본 대지진(2011년)은 21세기 인류 문명을 시험한 양대 사건이다. 9·11은 인간이 만들어낸 참극이었지만 3·11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은 인간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연재앙이다. 이에 비해 원전사고는 판단 착오와 시스템 오류가 빚은 인재(人災)의 성격이 강했다. 최고의 기술력과 안전신화를 자랑하는 일본의 방사능 사고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믿음을 흔들었다.

일본의 脫核과 한국의 反원전 여론 증가


3·11은 위기 속에서도 의연하게 자기 책임을 다하는 일본인의 근성을 보여주었지만 수면 아래 잠복했던 리더십의 부재, 관료사회의 무능, 매뉴얼 사회의 한계 같은 취약점을 드러냈다. 미야기 현 쓰나미 현장에서 대피방송을 하다 사망한 엔도 미키가 전자(前者)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잠적했다 최근 도쿄전력 사장으로 복귀한 시미즈 마사타카는 후자(後者)를 대표한다. 이재민용 물자를 수송루트 미비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비상사태에 대비한 비상발전기를 바닷물이 들이닥칠 위험이 있는 1층에 배치한 것도 믿기 힘든 ‘매뉴얼의 구멍’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정부의 사고 은폐 및 축소 의혹이다. 도쿄전력은 지난해 3월 11일 원자로 노심이 용융되는 멜트다운(meltdown)을 예견했지만 정부는 이를 깔아뭉갰다. 만일 노심 용융이 진행되기 전에 해수를 주입했다면 4기 모두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았을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확산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발표해 국민이 대피할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으니 일본 국민이 참 무던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 같으면 나라가 뒤집혀도 몇 번은 뒤집혔을 것이다.

원자력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일본의 탈핵(脫核)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40년 이후인 2052년까지 원자로를 해체할 계획이다. 현재 54기의 원전 가운데 2기를 제외한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일본이 원자력과 결별하는데 우리는 계속 갈 것인가. 우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만들고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하면서 안전성 강화에 나섰지만 후쿠시마 이후 여론의 수용성이 떨어졌다. 동아일보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은 ‘원전이 필요하다’(65.7%)고 생각하면서도 ‘안전하지 않다’(36.5%)고 응답하는, 모호하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향후 원전 확대가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핵 테러 방지’ 정상회의 반대 명분 없다


3·11 1년을 맞은 시점에 서울에서 47개국 정상이 참가하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 테러분자의 핵물질 습득을 막고 후쿠시마 사태의 교훈을 되새기며 핵 안보를 담보할 방안을 강구하는 회의다. 그런데 반대세력들은 이를 ‘죽음의 장사꾼’이라고 규정하고 후쿠시마 사태와 결부지어 반대시위에 나서고 있다. 핵 테러 예방을 위한 정상회의를 핵무기 폐지 및 원전 중지를 요구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번 회의의 성격을 알지 못해 그러는 건지,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핵안보정상회의의 뿌리는 9·11테러에 있다. 핵물질이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면 9·11 이상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핵 안보에 대한 국제협력의 필요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3·11 대지진으로 원자력의 가공할 힘을 목격했다. 두 사건은 인간 이성(理性)의 한계를 드러냈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도 이성의 몫이다. 테러든 원자력이든 막연한 공포에 근거한 감상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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