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이산가족 상봉 거부는 反인륜

  • 동아일보

남북한 분단이 67년째 지속되면서 헤어진 혈육을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는 이산가족이 늘고 있다. 1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만8678명의 39%인 4만9776명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별세했다. 그나마 생존자의 80%가 70세 이상의 고령자여서 매년 4000명가량 세상을 뜨고 있다. 의료와 식량 사정이 나쁜 북한 이산가족의 형편은 더 급할 것이다. 정부는 헤어진 혈육 상봉의 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산가족의 한(恨)을 다소나마 풀어준다는 취지로 어제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을 제의했다.

남북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가졌다. 두 번 모두 북한의 제의를 우리 정부가 받아들여 상봉이 성사됐다. 북한도 우리처럼 열린 마음으로 이번 제의에 호응할 것을 촉구한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천륜(天倫)을 안다면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는 이들의 심정도 헤아려야 한다.

북한은 김정은 등장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국제사회를 향해 문을 얼마나 열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다. 이 회담에서는 북한의 초기단계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대북(對北) 영양지원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미국과의 정치회담에는 응하면서 인도주의에 따른 이산가족 상봉을 외면하면 북-미 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북-미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남북 실무접촉을 제의한 사실을 밝히면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포함한 남북 간 인도적 현안을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 삼아 쌀과 비료를 북한에 지원했다. 이 정부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면 남북 대화와 남한의 대북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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