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세정]지식 ‘전달과 생산’ 분담해 등록금 낮춰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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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지난해부터 큰 이슈로 대두된 대학의 ‘반값 등록금’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대학마다 등록금 책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국공립대학의 기성회비 문제까지 불거졌다. 이 이슈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미 대학생 장학금의 확충과 많은 대학에서 명목 등록금 인하라는 작은 결실은 가져왔다.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학의 등록금 인하 폭은 크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의 학비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다. 학비 때문에 공부를 못하거나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공정성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반값 등록금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아니면 반짝하다가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과성 인기영합 정책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사실 반값 등록금의 원조는 우리 정치인들이 아니라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다. 드러커 교수는 1997년 한 인터뷰에서 “30년 후 대학 캠퍼스는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다. 현재 (미국) 대학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결국 살아남기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즉, 대학들이 학비를 낮추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측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학들의 등록금은 지속적으로 올랐고, 그동안은 표면적인 경제 호황과 대학 진학 희망자의 지속적인 증가 때문에 대학 등록금 인상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미국 대학생들도 높은 등록금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 또한 국가재정이 나빠져 대학에 대한 지원을 줄이자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처럼 비싼 등록금에 대한 반발은 이제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전체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가 됐다. 드러커의 예측이 드디어 실현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대학종말’ 예언

그러면 드러커 교수는 과연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의 생산과 전달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대학들이 무조건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다만 현재의 전통적인 대학 운영 방법에 큰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드러커 교수는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터넷 강의, 원격 강좌의 급속한 보급을 주목하면서, 이러한 전자학습(e-learning)과 가상 캠퍼스가 결국 전통적인 대학 교육을 대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학생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교수들이 강의하는 형태의 대학 교육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점점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세계의 유수 대학들이 인터넷 강의를 앞다투어 개설하고 있고, 그런 강의의 수강비용은 수강생 규모의 대형화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모든 대학이 인터넷 강의를 늘리면 비싼 등록금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일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교육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직접적인 면대면(面對面)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오랫동안 논란이 된 이슈다. 이러한 이슈를 차치하고라도 현대 지식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전통적인 지식 ‘전달’의 역할도 수행하지만 21세기 대학은 이에 못지않게 첨단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기능도 중요하다. 그런데 지식의 전달은 인터넷 강의 등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지만, 지식의 생산 비용은 그럴 수 없다는 데 대학의 비용 절약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 과학이 발달하면서 지식의 생산 비용은 점점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최첨단 연구에는 대규모 장비와 시설이 필요하고, 특히 학제(學際) 간 연구가 중요해지면서 연구 인력의 집중도가 심화되기 때문에 연구중심 대학의 규모와 예산은 점점 커지고 있다.

IT 기술 활용한 대규모 강의로

결국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학의 역할 분담밖에 없다. 지식의 전달을 위주로 하는 대학과 지식의 생산을 위주로 하는 대학으로의 분화인 것이다. 전자에 속하는 대학은 정보통신기술을 최대한 활용한 대규모 강의 등으로 비용을 줄여 학생들의 등록금을 낮춰 줄 수 있지만, 후자에 속하는 대학은 정부나 수익자의 부담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지금처럼 획일적으로 모든 대학의 등록금을 낮추려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일어날 이러한 대학의 분화 과정은 엄청난 구조조정이 필요한 일이고 대규모 반발도 예상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리 반대하고 발버둥쳐도 세상의 흐름을 거역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당장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꼼수를 부리기보다 이러한 장기적인 추세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sjoh@ib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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