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6>‘푸름이 두른 집’ 환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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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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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식영정의 남쪽에 환벽당(環碧堂)이 있다. 이 집을 지은 김윤제(1501∼1572)는 식영정을 지어 장인인 임억령을 모신 서하당 김성원의 삼촌이다. 그리고 이 자미탄 강가에서 놀다 환벽당의 주인 김윤제에게 전격 스카우트된 송강 정철은 김윤제의 손주 사위다. 그러니까, 일컬어 호남 가사문학권에 모여 있는 식영정, 송강정, 서하당, 환벽당의 주인들은 모두 얽히고설킨 친인척들인 셈이다.

김윤제는 1501년생으로 남명 조식, 퇴계 이황과 동갑이다. 각각 남명은 낙동강 서쪽의 지리산에, 퇴계는 낙동강 동쪽의 청량산에, 김윤제는 지리산 서쪽 자미탄의 성산에 살며 한 번의 만남도 갖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명과 퇴계는 서신 교환을 통해 서로 견해를 주고받았고, 김윤제의 수제자이자 손주 사위인 정철은 기축옥사를 통해 퇴계와 남명의 제자들을 수없이 죽였으니 험한 시대를 살았던 끈은 어떻게든 이어지게 되어 있나 보다.

정철을 기른 업보가 환벽당에 이어졌는지, 지금 환벽당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산등성이에 엉거주춤 서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래 담으로 둘러싸인 환벽당 아래의 빈터에는 김윤제의 살림집이 있었다. 환벽당은 식영정처럼 독립된 정자가 아니라 살림집의 뒤란에서부터 이어지는 뒷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정자인 것이다. 조성된 당시에 이 뒷산에는 거대한 대나무 숲이 환벽당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 대나무 숲의 푸름이 집을 두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환벽당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 그 푸름은 간 데 없고, 아래쪽에 있던 살림집도 흔적이 없다. 차 떼이고, 포 떼였는데 어떻게 집만 남아 그 옛날의 환벽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 환벽당은 산세에 밀려 겨우 한쪽을 부여잡고 서 있는 모습이다. 김윤제는 대나무 숲의 수직성에 맞춰 세 칸 건물의 두 칸을 방으로 들이고 정면 전체에 툇마루를 들여 기둥에 좀 더 강한 수직성을 부여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대숲이 없어지자 그 옛날 대나무의 수직성과 조응하던, 흡사 대나무 같아 보였을 힘찬 기둥들이 이제는 왜 저러나 할 정도로 머쓱할 지경이다.

다시 한 번 조선의 집은 집이 아니라 집 바깥에 있다는 걸 절감한다. 그래도 아직 자미탄은 그 옛날 정철과 김윤제의 만남을 추억하고 있는지 용소의 물이 더 짙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지미탄#식영정#환벽당#김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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