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7>‘붉은 겹의 구조’ 명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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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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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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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다. 봄은 만물이 부활하는 계절이다. 일제히 부활하니 감동이다. 예수의 부활에도 상처가 꼭 등장하듯이 그래서 봄은 잔인하다. 나는 봄이 오면 모든 생명들의 뿌리를 만져주고 싶다. 전남 담양의 명옥헌(鳴玉軒)은 항상 봄의 앞머리에 늘 생각나는 집이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의 문인 오희도(1583∼1623)가 자연을 벗 삼아 살았던 곳이다. 이렇게 아버지가 터를 잡은 땅에 아들 오이정(1619∼1655)이 정자를 짓고 은둔했다. 그러나 사실 명옥헌에 가보면 이것이 은둔자의 삶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화려한 정원이 딸린 세거지(世居地)와 부르면 금방 놀러 와 주는 벗들, 언제나 수족같이 부릴 수 있는 하인들, 세속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이런 세속이야말로 무릉도원 아닌가?

조선시대의 은둔자를 유럽의 중세 수도원의 은둔자들과 비교하면 안된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은둔관은 좀 특별하다. 세상과 완전히 절연하고 들어가는 것은 불자들이 하는 일로 여겼다. 사대부들은 출사해서 벼슬을 하다가 자기의 뜻과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직하고 낙향했다. 그러다 시절이 자기 뜻과 맞으면 다시 나아가 벼슬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 사대부들의 은둔이란 항상 세상을 경영할 꿈을 꾸고 있는 웅크림이다. 그렇다면 아직 출사하기는 싫고, 세상을 보니 불만만 쌓일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런 때는 상소가 있었다.

명옥헌의 터를 먼저 잡은 오희도는 왕이 되기 전의 인조가 직접 명옥헌을 방문할 정도로 유력한 유림이었다. 지금도 있는 늙은 은행나무는 인조가 말을 맸던 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아들인 오이정은 벼슬길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일찍 벼슬에 뜻을 버리고 명옥헌을 지어 은둔자의 삶을 살았다. 앞서 말했지만,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었다면 무슨 벼슬할 마음이 일겠는가? 오이정은 이 명옥헌에서 거문고를 타고 세월을 즐겼을 것이다.

누구나 명옥헌 하면 배롱나무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명옥헌은 소나무에 둘러싸여있다. 그 소나무 가운데 배롱나무 숲이 있고, 배롱나무 숲 안에 명옥헌과 연못이 있다. 그저 일직선으로 주욱 따라 들어가면 알아채지 못하는 겹의 구조를 명옥헌은 갖고 있다. 정자와, 그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땅의 이야기를 들으며 에두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 겹의 구조와 만난다. 태아처럼 거기서 깊은 잠에 빠지고 싶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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