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대화하는 자리에서 필자가 “미국에서는 유대인을 비판하면 교수직을 유지하기 어려운데 무슨 만용으로 이스라엘 로비를 비판하는 글을 썼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도 왜 그것을 모르겠느냐? 그러나 미국 교수들에게는 테뉴어(정년보장) 제도가 있다. 테뉴어 교수가 되면 자신이 행한 발언으로 인해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나는 그 무시무시한 이스라엘 로비에 대항해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필자는 그때까지 테뉴어 제도가 나이 든 교수의 노후를 보장하는 복지제도로 알았는데, 교수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고귀한 제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부끄러웠다.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는 지식인에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부여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막스 베버의 ‘Wertfreiheight’(value-free)를 몰가치성 또는 가치중립성이라 오역하는데 기존의 기득권적 학문외적 가치와 압력으로부터 자율적인 ‘가치자유성’이 올바른 번역이다. 인터넷상 언론자유 통제 심각
그런데 자유주의를 내걸고 집권한 보수정권하에서 역설적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평가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2006년 31위에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47위로, 2009년에는 전년 대비 22단계나 하락한 69위로 추락했다. 그리고 보수적인 프리덤하우스는 2011년 5월 2일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2010년의 67위에서 3등급 하락한 70위로 평가하면서 한국을 1990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부여했던 ‘언론자유국(Free)’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Partly Free)’으로 강등시켰다. 프리덤하우스는 2011년 4월 22일 ‘인터넷상의 자유’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인터넷 자유를 37개국 중 9위로 평가하면서 ‘인터넷상에서도 부분적 자유국’으로 분류했다. 자유주의 정부하에서 한국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언론 자유가 부분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로 전락했다.
인터넷상의 언론 자유 통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제하는 법 제정의 시도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핵심멤버인 정봉주 전 의원을 구속하고 면회를 제한함으로써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정봉주의 구속 사건을 미국 3대 일간지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비판하면서 기세등등하던 정부의 언론 통제도 한풀 꺾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SNS 선거운동 규제를 한정적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SNS 선거운동을 사실상 무제한 허용했다. 특히 보수적인 이코노미스트가 정봉주 구속을 비판한 이유는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핵심적 기본권인데, 권력자를 비판했다고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원천적인 침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정봉주의 구속은 나꼼수를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팟캐스트로 만들 것이다”라는 언중유골의 논평을 했다.
이런 언론 자유의 추락은 한국 민주주의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왜냐하면 언론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선택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 전 미국 대통령의 명구는 제퍼슨이 그에게 적대적인 언론의 중상모략에도 3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나온 것이다. 적대적인 언론에 시달렸던 제퍼슨이 정부보다 언론 자유를 중시한 이유는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정부는 계속해서 좋은 정부가 될 수 없는 반면 자유 언론은 여론을 집약하고 표출해 이성적 공론을 형성하고 정부를 감시해 좋은 정부가 계속되도록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수정헌법 제1조’에서 “의회는 종교, 언론, 출판, 집회, 청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 언론 자유를 천부의 권리로 명문화하였다.
언론자유 없는 민주주의 상상못해
미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이 한국 언론자유지수가 하락한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와 언론 자유 침해 때문이라고 보고 있으나, 필자는 야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야당(opposition party)은 기본적으로 정부와 여당에 반대하는(oppose) 당이다. 그런데 헌법상으로 보장된 언론 자유가 위축되고 침해돼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에도 야당은 충분히 반대하지 못했고 의원직을 걸고라도 언론 자유를 사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야당은 제3세계 국가 수준으로 떨어진 언론 자유를 회복하겠다는 공약을 최우선적으로 내걸고 이번 4월 총선에 임해야 할 것이고, 국민들은 위기에 처한 언론 자유를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자신의 기본권 문제라는 자각하에 언론 자유 회복 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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