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백희영]‘가족 함께’ 시간 늘려야 학교폭력 없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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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얼마 전 방영된 남극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에서 ‘황제펭귄’의 육아방식은 감명적이었다. 펭귄 부부가 짝짓기 해 알을 낳고 품어 부화된 새끼가 자라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살피는 모습은 부부간 평등한 역할 분담과 일·가정 양립, 그리고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방식에 대한 완벽한 모범 사례였다. 황제펭귄들은 남극 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 태어나는 새끼들을 철저히 보호하면서 성장 단계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며 독립해 나가도록 부부가 힘을 합쳐 순차적으로 키워낸다.

청소년 문제는 한국적 삶의 業報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발생한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노출되는 학교폭력 실태에 우리 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폭력과 청소년 자살 문제는 그동안 한국인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초래되는 일종의 업보다.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고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교와 가족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과학기술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가해 학생들을 격리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학생 시절에 폭력을 저지른 아동의 70%는 성인이 된 후 범죄자가 된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학교 폭력의 원인을 아이들의 개인적 특성에서 찾기보다는 사회구조의 특성에서 찾아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을 강구해야 할 때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압축 성장’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과 가정의 엄격한 분리와 장시간 근로 문화가 고착됐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500시간 정도 더 일한다. 작년 1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이 43.6%로 외벌이 가정보다 더 많아졌다. 그러나 장시간 근로를 당연하게 여기는 직장 분위기는 여전하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이 각각 직장과 어린이집이나 학교로 가기 위해 아린 가슴을 참고 아침에 헤어진다. 그러고는 대개 밤늦게 귀가하여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든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함께 풀고 관심사를 공유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 더욱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늘어나는 과도한 학습 부담과 특히 입시를 앞둔 학생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 간의 대화나 여가 활동이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펭귄 육아방식에서 배워야

정보화와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새로운 청소년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아직 두뇌는 더 발달해야 하는 기간이다. 지적 수준이나 판단력은 미완성 단계에 있다. 청소년들이 인터넷게임 중독에 특히 취약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중학생 자살 사건을 통해 인터넷게임 중독이 학교폭력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가해 학생들은 친구가 자살한 사실을 알고 나서조차도 “ㅋㅋㅋ” 문자를 보냈을 정도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다가 뒤늦게야 참회했다. 게임중독으로 인해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근에 도입된 청소년들의 심야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이른바 ‘셧다운제’가 제대로 시행돼야 한다. 나아가 새로 논의 중인 ‘사용시간 제한제’, 일정 시간 게임 후에 속도가 느려지는 ‘피로도 시스템’ 등 게임중독에 취약한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완적인 제도도 적극 시행돼야 한다.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과 치료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에게 다양한 놀이와 관심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가족의 역할이 중요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부부가 함께 자녀를 키운다는 가족 본연의 역할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가정은 있으되 가족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생활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일 중심 문화에서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문화로 전환하여 초과 근무, 회식, 주말 근무 등을 없애고 유연근무제를 확산해 일하는 부모들이 성장하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극의 황제펭귄들이 우리나라 청소년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중독성 강한 인터넷게임, 욕설이 난무하는 노래, 음란 동영상을 비롯하여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들, 미성년 자녀를 놓아둔 채 밤늦도록 그것도 대개는 주말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일해야만 하는 한국의 부모들, 학생들이 ‘왕따’당하고 폭력을 당하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방치하는 어른들…. 하나같이 펭귄 부모들이 딱하고 한심하게 여기고도 남을 사안들이다.

이 와중에 육아휴직 기간을 승진에 필요한 근로기간에서 제외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인 한국 사회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hypai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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