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왜 요르단에 관광객들 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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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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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열흘 전 나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있었다. 요르단은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스라엘로 둘러싸이고 사해는 이스라엘, 홍해(아카바 만)는 이집트와 공유한 아라비아사막의 작은 나라(남한 규모)다. 당시 CNN에서는 재스민혁명 여파로 터진 폭동과 유혈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하던 이집트와 시리아 사태가 연일 톱뉴스였다. 불안하기만 한 중동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요르단은 태평하기만 했다.

길에서 히잡(스카프처럼 머리를 가리고 얼굴만 드러내는 이슬람식 여성 복장)과 부르카(눈만 빼고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 천) 차림의 여성이 줄지어 걷는 모습을 봤다. 대학생이 아닐까 싶어 따라갔다. 예상은 적중했다. ‘프린세스 알리아’ 여자대학이 나왔다. 들어가 보고는 싶었으나 언감생심이었다. 폐쇄적인 이슬람권에서도, 그것도 여자대학에, 게다가 남자 경비원 서넛이 정문을 지키는데 낯선 동양의 이방인을…. 그런데 아니었다. 여대생 셋이 능숙한 영어로 말을 걸어온 것. 그들은 내 희망을 경비원에게 전했다. 대답은 불가. 그러자 이들은 경비원을 다그쳤고 결국 총장 면담을 얻어냈다. 뜻밖의 환대였다.

그렇게 들어선 이슬람의 여대 안. 그날 나의 출현은 이 학교에도 ‘사건’이었다. 히잡과 부르카 차림의 여학생 수백 명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의외의 환대는 총장실로 이어졌다. 미국 유학파 총장(남자)은 흔쾌히 승낙했다. 전통 차까지 대접하면서. 학교는 시내에 자리한지라 운동장도 없이 건물뿐이었다. 재학생은 4000명. 한 영어과 여교수는 안내를 자청했고 덕분에 학생들과 대화도 나눴다.

그러는 내내 교내는 난리법석이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여학생들이 난데없이 나타난 동양인 주변에 몰려든 탓이다. 휴대전화로 함께 사진 촬영을 요청하기도 했다. 나도 카메라를 꺼내 촬영했다. 젊디젊은 청춘의 총총히 빛나는 눈과 해맑은 얼굴을. 비록 히잡과 부르카로 머리와 얼굴은 가렸어도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만큼은 가릴 수 없던. 카메라 앞에서 학생들은 포즈도 취했다. 부끄러워 얼굴을 돌리거나 책으로 가리는 학생도 있었지만.

이슬람권에서, 그것도 여성을 동의 없이 촬영하는 건 ‘금기’. 그러나 그날 거기선 달랐다. 그건 또 다른 ‘환대’였다. 그들은 이미 세계화돼 있었다. 영어 구사부터가 그랬다. 왜 영어를 배우느냐고 묻자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라고 답했다. 여교수 말도 같았다. 여학생들이 내게 몰려온 건 바깥세상과 대화하고 싶어서라고.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 한 여학생이 청재킷 안의 셔츠를 보여주었다. 한국의 아이돌스타 얼굴이 있었다. 그녀도 나도 그가 누군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걸로 우린 이미 ‘소통’했다. 케이팝도 듣느냐고 묻자 한 학생이 ‘슈퍼주니어’를 댔다.

요르단은 아라비아사막의 황무지 산악지대인 데다 석유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슈퍼마켓에선 온갖 채소와 과일 등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사해 홍해엔 유럽인 관광객도 많았다. 평화 여유 자체였다. 이웃 시리아와 다른 이유를 한 현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잘 먹고 잘사는데 다툴 일이 있겠는가.” 압둘라2세 왕의 요르단은 평균 7%의 고도 성장세다. 홍해 사해 중심의 관광산업도 고속 질주다. 관광은 ‘환대(Hospitality)’산업이다. 요르단 암만의 여자대학에서 확인한 ‘환대’만으로도 요르단 관광산업의 미래는 밝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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