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게한 그 사람]송재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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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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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동화 같은 선생님’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송재찬 동화작가
송재찬 동화작가
제주도에서 두어 해를 근무하다 자원해서 옮긴 곳은 춘양목으로 유명한 경북 봉화 춘양초등학교였다. 동화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감히 꿈도 못 꾸었지만 왠지 동화가 맘을 끌어 동화를 찾아 읽던 무렵이었다.

겨우 동화에 눈뜰 무렵 ‘이오덕’이란 분이 가까운 골짜기 벽지 학교에 근무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집과 글쓰기 이론서를 냈고 신춘문예에 수필이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그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20, 30대들이 주로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여서 나는 젊은 분이려니 하고 소액환을 끊어 책을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곧장 책과 편지가 왔다. 그런데 글쓰기 이론서의 약력을 보니 대선배님이 아닌가.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선생님이 내 삶 깊숙이 들어와 나를 이끌어주실 분일 줄 전혀 상상도 못했다. 그냥 이웃 학교에 계신 선배 선생님, 글쓰기 이론에 탁월한 선배 선생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5월이던가, 내 동화가 1회 추천으로 초등학교 교사들이 보는 잡지 ‘새교실’에 실렸다. 처음 쓴 동화인데 이원수 선생님의 추천을 받은 것이다. 또 하나 기쁜 일은 이오덕 선생님이 그 동화를 읽고 보내준 격려 편지였다. 그때부터 나는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러 다녔다.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한 시간 넘게 걸어가서 뵙기도 했다. 선생님 댁에 가면 동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그분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를 눈여겨보았다. 서점에 가면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읽던 책들을 찾게 되었다. 선생님은 서울 가는 길에 우리 하숙집에도 들르셨다. 내가 없을 때도 내 방에 들러 내가 쓴 동화를 읽고 평을 남겨 주시기도 했다.

이오덕 선생님이 권해서 ‘강아지똥’의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러 간 날은 제법 더운 날이었다. 놀랍게도 그분은 ‘새교실’에 실린 내 동화를 읽었다고 했다. 칭찬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오덕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해서 그 잡지를 구해다 읽었던 것 같다. 권 선생님은 동화 같은 분이었다. ‘강아지똥’과 장편소설 같은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의 따뜻함과 치열함을 그가 사는 모습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신춘문예에 작품을 보내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나도 동화작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권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 전까지 나는, 동화작가는 나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교육 잡지에 3회 추천만 받아도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권 선생님을 만나고 보니 나랑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분이었지만!). ‘강아지똥’은 월간지인 ‘기독교 교육’이 주관한 제1회 아동문학상 수상 작품이었다. 선생님은 그 잡지를 보여주며 나에게도 거기 한 번 응모해 보라고 했다.

권 선생님과는 다정한 형님처럼 자잘한 이야기까지 나누었지만, 이오덕 선생님은 근엄한 아버지처럼 매우 어려운 분이셨다. 가까이서 지켜본 선생님은 농담 한 번 하지 않았고 어떤 잡기에도 손대지 않으셨으며 늘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분이셨다. 그분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늘 조심스러웠다. 편지를 쓸 때도 한 번 연습해서 정성껏 썼고 그 옆에서는 말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러나 그분을 통해 나는 ‘어린이 교육’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동화’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두 분 선생님을 만나면서 ‘기독교 교육’과 ‘창주아동문학상’에 당선되었지만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 신춘문예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신춘문예 응모작품을 마무리하고 세수를 하려는데 코피가 쏟아졌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나에게 코피는 좋은 예감이었다. ‘기독교 교육’에 응모할 때도 코피가 쏟아졌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보가 배달사고로 늦게 오는 바람에 나는 낙선인 줄 알고 꿍꿍 앓았다. 그러나 당선 전보를 받는 순간 감기 몸살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오덕 선생님께 편지를 드렸더니 시상식 때 같이 가 주신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중앙선 열차를 탔다. 내 나이 26세가 막 시작된 1976년 1월이었다.

송재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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