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사람 죽인 가습기 살균제

동아일보 입력 2011-11-14 03:00수정 2011-1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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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CSI’를 보면 과학수사대는 총알 탄도를 분석하거나 피해자의 몸에 붙어 있는 곤충이나 식물을 추적해 범인을 찾아낸다. 괴짜 의사를 다룬 미드 ‘하우스’에서 의료진은 환자의 주거공간에서 감염원인을 찾아내는 일부터 한다. 이런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한 사건이 국내에서 발생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임산부와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폐 손상의 범인으로 가습기에 넣는 살균제를 지목했다. 올해 4, 5월 4명의 산모가 병원에서 잇달아 사망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9명이 원인미상의 폐 질환으로 사망했다.

▷문제의 살균제 성분은 PHMG와 PHG로 이 성분을 들이마신 쥐의 폐는 정상 쥐보다 빵빵하게 부풀고 호흡곤란을 겪었다. 폐 손상으로 사망한 사람들과 똑같은 증세였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용 제품이므로 사람이 흡입할 경우에 대비한 안전성 검사를 해야 하는데 검사가 없었던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살균제 성분이 코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거나 알고도 가볍게 넘긴 생산회사와 관련기관이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세계적으로 10만여 개의 인공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고 매년 1000여 개의 신물질이 쏟아져 나온다. 비누, 치약, 세제, 화장품 등 가정용품의 대부분은 인공 화학물질이다. 가정용품은 피부에 직접 접촉되거나 코로 흡입되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중국산 소파를 집에 들여놓은 소비자 2000여 명이 소송을 제기해 2000만 파운드(약 360억 원)의 피해보상금을 받았다. 가죽소파의 곰팡이 예방을 위한 방부제 디메틸푸마레이트(DMF)가 피부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색소에 납이 포함된 중국산 완구가 미국에서 판매 중지되기도 했다.

▷가정용품은 생활의 편의를 증진시키지만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면 해악을 일으킨다.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환기를 하기보다는 방향제를 뿌리는 경우가 늘었다. 예전에는 방 안에 젖은 수건이나 빨래를 걸어놓고 화초를 키워 실내습도를 조절했지만 요즘에는 방마다 가습기를 틀어놓는 집이 많다. 가습기를 청소하거나 매일 물을 갈기가 귀찮아 가습기 살균제를 넣는다. 사람 죽인 가습기 살균제는 지나친 인공 화학물질 의존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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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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