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국회 방문도 어려운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2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조속한 처리를 호소하기 위해 어제 오후 국회를 방문하려던 계획이 연기됐다. 민주당이 “한미 FTA 밀어붙이기용 명분 쌓기”라고 억지를 부리며 방문을 반대하자 이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2∼14일) 참석 이후인 15일로 미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대통령의 새 제안이 없으면 만날 필요 없다”고 버티고 있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15일 회동도 유동적이다.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러 국회에도 못 가는 나라가 과연 정상적인 민주국가인가 싶다.

민주당은 그동안 현 정부에 대해 소통을 거부하는 ‘불통(不通)정권’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달 한미 FTA에 관한 이 대통령의 국회 연설과 청와대 초청 간담회를 거부했고, 이번엔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까지 가로막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1월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국회를 찾아 여야 지도부를 모두 만났다. 최대 국정현안을 논의하자는데 ‘안 가겠다, 오는 것도 싫다’는 정당이야말로 꽉 막힌 불통정당 아닌가.

민주당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을 무단 점거한 지도 열흘이 넘었다. 민주당이 뒤늦게 문제 삼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은 노 정부가 2007년 협정을 체결할 때 들어 있던 그대로이고, 세계적으로 통용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런데도 87석을 가진 제1야당인 민주당 지도부는 6석의 민노당이 주장하는 대로 끌려다니는 한심한 모습을 보인다. 재미 교포들은 한미 FTA가 야당의 반대로 비준되지 않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판이다.

청와대의 일처리 방식도 미숙했다. 한미 FTA 대치국면이 장기화할 동안 청와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뒤늦게 대통령이 해외순방 전날에 급하게 국회를 방문하겠다고 함으로써 야당에 반발할 빌미를 주었다. 청와대는 평소 국회 접촉에 소홀하다가 갑자기 일방통행식 행보를 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개혁에 대한 야당(공화당)의 강경한 반대를 어떻게 돌파했는지 알 것이다. 미국의 건보개혁이 2010년 3월 상하 양원을 통과하기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당적을 가리지 않고 법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수시로 만났다. 한미 FTA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때 이 대통령의 노력은 크게 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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