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MB 곁의 프셀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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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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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정치부장
박제균 정치부장
“황후 무덤 주위의 작은 기둥에 은이 박혀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습기가 찼다. 자연법칙에 따라 거기에 버섯이 자랐다. 그 모습을 본 콘스탄티누스 9세는 ‘주님이 황후의 무덤에 기적을 일으켰다’고 떠들고 다녔다.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황제의 말에 동의했다. 어떤 이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이는 아부로 얻을 수 있을 이익을 생각하면서….”(‘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이노우에 고이치)

10·26 선거 참패 다음 날의 인사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9세(재위 1042∼1055년)의 측근이었던 프셀루스가 황제 사후에 남긴 글이다. 그런데 그 일을 ‘주님의 기적’으로 만든 건 황제가 아니었다. 프셀루스 자신이었다. 그는 생전의 황제 앞에서 “황후의 무덤에 ‘자연 법칙을 어기고’ 꽃(버섯)이 피었다”고 아부를 떨었다. 아첨도 이 정도면 예술의 경지다.

언제부턴가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 프셀루스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그 ‘그림자의 장막’이 국민과 대통령 사이를 차단하는 느낌이다. 아무리 늦었더라도 MB는 뼈저리게 느꼈어야 했다. 적어도 10·26 서울시장 보선 참패 때는. ‘성난 2040’ 민심의 쓰나미를….

말로는 “선거 결과에 담긴 젊은 세대의 뜻을 깊이 새기겠다”고 해놓고, 내놓은 대책이 ‘선 민심수습, 후 인적개편’이었다. 민심을 수습하는 데 인적개편만큼 효과 있는 대책은 없는데 말이다.

MB는 도리어 선거 다음 날인 10월 27일 어깃장을 놓았다. 내곡동 사저 문제로 서울시장 보선에 치명타를 안긴 경호처장을 바꿨는데, 그 인사(人事)가 더 문제였다. 여권에는 2008년 촛불사태 때의 무능한 대응으로, 야권에는 ‘명박산성’으로 비난의 표적이 된 인물을 임명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문제를 경호처장이 단독으로 처리했을 거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측근들도 관여했을 거란 게 ‘상식’이다. 경호처장 인사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 인사였다. 졸지에 보선 참패의 ‘원흉’이 돼 쫓겨난 김인종 전 경호처장도 속으론 할 얘기가 많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꼬리’를 잘라 내고 ‘몸통’을 들인 것이다.

9일 임명된 이강덕 서울경찰청장 인사는 또 어떤가. 지난해 8월 임기를 7개월 남긴 강희락 경찰청장을 조현오 청장으로 바꿀 때부터 ‘조 청장은 이강덕 경찰청장 임명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말이 돌았다. 한 번 더 경찰청장(임기 2년) 인사를 해 동향인 이강덕 당시 경기경찰청장을 앉힐 수 있도록 강 총장 임기를 줄였다는 얘기다. 이런 ‘음모론’이 각종 언론에 보도될 정도면 아무리 이 청장이 예쁘더라도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의 인사다. 그래야 만사(萬事)의 기본인 인사 기강이 선다. 그런데도 MB는 오히려 이 청장을 경찰청장 자리에 한층 가까운 서울청장에 올렸다. ‘음모론’이 현실이 되는 순간, 국가 기강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

不通이미지 주범은 인사

MB가 지금처럼 불통(不通) 이미지를 굳히게 된 주범은 인사다. 그런데도 정권 초부터 지금까지 그 숱한 인사 잘못이나 인사 검증 부실 때문에 인사 라인의 누군가가 문책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주군의 눈과 귀를 막는 프셀루스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는 까닭이다.

하기야 프셀루스를 신하로 쓰든, 위징(魏徵·당태종에게 직언했던 충신)을 쓰든 이는 전적으로 주군(主君)의 몫이다. 다만 첫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이 “기업에서 ‘내맘대로 인사’를 했던 CEO 출신 대통령은 인사를 못 한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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