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영의 딸’ 외면하며 무슨 進步요 인권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4일 03시 00분


우리는 왜 ‘통영의 딸’ 신숙자 씨를 반드시 구해내야 하는가. 첫째, 신 씨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 씨는 낯선 땅에서 외화를 벌어 가난한 조국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던 1960년대 파독(派獨) 간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셋째, 신 씨는 아이들의 아빠와 생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켰다. 북한 공작원에게 속아 가족을 데리고 입북한 남편 오길남 씨가 해외 유학생을 포섭해 데려오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떠나기 전에 “당신이라도 탈출하라. 탈출에 성공하면 우리를 빼내라. 그렇게 되지 않을 땐 우리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결연한 당부로 또 다른 국민의 희생을 막았다.

25년 회한의 세월을 보내온 오 씨는 병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아내를 구하는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어제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구출! 통영의 딸 100만 엽서 청원운동’에서 오 씨는 주소도 알 수 없는 아내와 두 딸에게 엽서를 보냈다. 1986년 북한을 나올 때 두 딸 혜원과 규원의 나이는 7세와 10세였다. 지금은 32세와 35세로 성장했을 두 딸과 69세의 아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청원운동을 주도하는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는 고려대 학생회장이던 1991년 북한 체제를 찬양하며 박성희 성용승 등 두 대학생을 평양에 보내는 결정을 주도했다. 그는 지금 속죄하는 심정으로 신 씨 송환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27개 시민단체가 참가한 이 청원운동은 국민 100만 명의 엽서를 모아 대한적십자사와 유엔에 전달할 계획이다. 그제 미얀마 독재정권이 미국 유럽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해 정치범 300명을 석방했다. 유엔을 통한 압력이 신 씨 모녀 구출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북한은 미얀마보다 더 악독한 정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햇볕정책을 펴면서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한꺼번에 북한으로 돌려보내고도 단 한 명의 납북자도 구해내지 못했다. 인권은 좌우의 이념을 떠나 그 이념이 서있는 토대일진대 한국의 자칭 진보 세력은 납북자나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발의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발목잡기를 계속하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북한 눈치를 보면서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고 있다. 신 씨 모녀 구출 운동은 납북된 우리 국민 약 500명을 자유의 땅으로 데려오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큰 발걸음의 시작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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