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똑똑한 남학생들은 다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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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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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똑똑한 여학생은 너무 많은데….”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개탄하듯 말했다. 채용 기업으로 보나, 나라 장래로 보나 박수칠 일인데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토익이나 학점, 말주변도 남자들이 여자 못 따라간다. 간신히 성별 안배해 뽑고 나면 여직원들은 주로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인데 남자들은 아니다. 아예 지원을 안 하는 모양이다.”

“그럼 똑똑한 남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내가 묻자 옆에 있던 교수가 말했다. “외국유학이나 다국적 기업을 가지요.”

아니나 다를까 LG전자가 4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지난주엔 일본에서 엘리트 엔지니어와 유학생들을 초청해 글로벌 연구개발(R&D) 인재 영입 행사를 열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특명에 따라 모셔온 S급(슈퍼급) 인재들 역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경영학석사(MBA)다. 산업화시대의 유학생은 학위만 따면 조국에 돌아와 봉사하는 걸 영광으로 여긴 애국선배였다. 요즘은 다르다. 웬만하면 안 오려고 해 임원들이 삼고초려해야 할 판이다.

2007년 동아일보는 ‘5년 뒤 한국과 5대 도전’이라는 창간 87주년 기념특집 중 ‘엘리트를 길러라’ 편에서 ‘평준 고교에 대충 대학…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걱정했다. 당시 포스텍 박찬모 총장은 “5년 뒤 고급인력이 없어 한국 경제의 엔진이 멈출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 우려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4년 전 신문기사 “두뇌유출 우려”

노무현 정부야 평등을 최고가치로 삼은 좌파정권이라 어쩔 수 없었다 치자. 그러나 ‘글로벌 창의인재 육성’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가 교육정책의 최우선을 사교육 억제로 돌리면서 인재들의 해외 탈출을 증가시킨 건 납득도, 용서도 하기 어렵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개 회원국 중 유학생 최다 배출국이 됐다. 초·중등생 빼고 외국 대학 석·박사 과정까지의 유학생은 2004년 15만 명이 안 됐지만 2009년엔 18만 명으로 늘었다. 국력의 상징이 아니라 ‘교육 엑소더스’다. 세계경제포럼(WEF) 교육경쟁력 순위에서 고등교육체제의 질은 2007년 19위에서 2010년 57위로 추락했다. 정부는 2009년에는 과학고 입시에서, 2010년엔 모든 대학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올림피아드 성적을 못 쓰게 시시콜콜 간섭했다. 덕분에 그 전까지만 해도 늘 5등 안에 들던 우리 고교생들의 국제 수학올림피아드대회 성적이 올해는 13등으로 북한(7등)에도 뒤지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박사학위를 딴 뒤 미국에 남겠다는 이들이 늘어난 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두뇌유출지수를 보더라도 국가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출 정도가 더 심해졌다.

글로벌 인재들이 귀국을 원치 않는 주된 이유도 교육에 있다. 교수로 가고 싶은 국내 대학엔 철밥통 교수들이 버티고 있어 가기 어렵다. 국책연구소라도 갈라치면 “애들 학교 때문에 안 된다”고 아내가 결사반대다. 귀국할까 말까 하던 미혼 석·박사들도 교포 여성들에게 생포당하면 차라리 잘됐다며 주저앉기 십상이다.

인재 부족에 정보기술(IT) 빅뱅까지 겹치면서 삼성 같은 기업만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두뇌유출지수인 이탈리아를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이탈리아는 중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도 않고 무시험 대학 입학에, 전 대학의 학위를 동일 평가하도록 강제한 반(反)실력주의 정책을 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육과 닮았다. 그 결과 생산성 경쟁력은 추락했고 오늘날 청년실업률 27.8%에 디폴트(국가부도) 위기다. 똑똑한 남자가 사라지는 나라에선 여자들 고생도 심해진다. 당장 한국에서도 고학력 미혼여성들이 신랑감을 못 구하는 비극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년 3월 1일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공임신중절(낙태) 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 결과가 10대 미혼모 증가(19일자 동아일보 보도)다. “낙태만 줄어도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던 전 전 장관에게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신지 묻고 싶다. 낙태 금지는 임신기간이 열 달이어서 벌써 비극적 정책 결과를 목격했다. 교육정책은 MB 취임 때 학생이었던 세대가 죽을 때까지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어 더 무섭다.

교육과 R&D에 평등은 없다

내 자식은 엘리트가 못 되더라도 나라에는 엘리트가 있어야 국민이 먹고살 수 있다. 삼성이 밉더라도 이 나라에 삼성 같은 기업은 있어야 한다. IT 빅뱅시대를 살아남으려면 고학력 고숙련 인력이 필수인데도 정부부터 공부 열심히 하는 걸 죄악시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저소득층을 위한 비영리 교육단체인 벨웨더교육의 창립자 앤드루 로더햄은 “대학교육이 계층 상승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했다. 이 정부는 좌파교육의 비극을 겪고도 더 못한 교육정책을 편 죄를 어떻게 갚을 작정인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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