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나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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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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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가 더 잘 번다.” 베스 리빙스턴 미국 코넬대 교수팀이 지난 20년간 근로자 1만 명을 연구해 얻은 결론이다. “남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고 자평하는 까칠한 남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18%, 연봉으로 치면 9772달러(약 1040만 원)를 더 벌었다. 회사와 각자 연봉 협상을 하는 미국에선 “좋은 게 좋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주장이 분명하고 연봉 인상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남자가 조직이 원하는 ‘강한 남성성’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탤런트 현빈이 ‘해병 김태평’이 되기 전에 연기했던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도 그런 특성을 지녔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은 물론이고 남에 대해 관심조차 없고 차갑다. 인간관계 대신에 자신의 목표나 사업에만 관심을 쏟는다. 잘되면 돈 잘 벌고 일도 잘하는 리더가 되겠지만 잘못되면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냉혈한이 될 수도 있다. 남이 자기 때문에 상처를 받든 말든 개의치 않는 인간형으로, 독일의 나치 지도자였던 아돌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여자들이 이런 나쁜 남자에게 은근히 매력을 느낀다는 점을 보통 남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TV 드라마 속의 까도남들이 사랑에 빠지면 돈과 사랑과 열정을 겸비한 최고의 연인으로 돌변하기 때문일까. 독불장군 식의 남성성, 공격성 그리고 성공 의지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애정행각을 보면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말이 동양에만 있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리빙스턴 교수팀의 연구가 ‘지난 20년간’의 결과이고, 그것도 미국 얘기라는 점이다. 영화 ‘월스트리트’에서처럼 “탐욕은 선(善)”이라고 외칠 수 있는 시대는 저물었다. 제프리 이멀트 GE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각했던 1년 반 전 “야비와 탐욕의 리더십은 갔다”고 했다.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남과 잘 지내는 팀워크와 네트워크 능력이 개인기보다 위력을 발휘한다. 능력의 천재보다 성격의 천재가 더 높이 올라가고 더 큰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S급 인재들의 까칠함을 봐주지 않는 우리네 기업문화와 사회의식에도 문제는 있지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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